대만 핵폐기물 처리장 피해 주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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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타이베이=유상철 특파원]“왼쪽 다리 허벅지 부분의 뼈가 저절로 부서지고 말았어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臺北)시내에서도 부촌(富村)으로 소문난 톈무(天母)에 위치한 전싱(振興)병원의 5층 입원실 43호.다른 두 환자와 함께 한 병실을 쓰고있는 란위(蘭嶼)도 핵폐기물 피해자 옌푸라이(顔福來)의 두 눈엔 공허한 체념의 빛만 떠돌았다. 26일이 휴일이지만 방 귀퉁이에 위치한 그의 침상은 적막에 휩싸여 있다.그는 67년 란위도 예요우(椰油)촌 출생으로 올해만30세. “다리만 잘라내지 않았더라면 이미 결혼도 했을테고 지금쯤은 관광객을 상대로 한 조그만 해물요리식당을 차렸을 겁니다.그녀의고왔던 눈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어요.이젠 다 틀려버렸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이를악무는 바람에 顔은 말을 다하지 못한다. “예요우촌 아래 예인(野銀)부락과 홍터우(紅頭)촌 중간지점에 82년 들어선 핵폐기물 저장소 앞바다엔 예전부터 전복이 많았어요.그냥 안전하다는 당국의 말만 믿고 그곳으로 전복을따러 다녔던게 잘못이었지요.” 태평양 바다위에 뾰족이 떠있는 란위도의 땅위에서 나는 것은 고구마가 전부.때문에 전복 따기나오징어 잡이는 란위도 주민들의 생계를 지탱해주는 절대적 생업.결혼준비를 위해 顔은 한푼이라도 더 벌고자 더 많이 바다를 찾았다. 그러던 지난해 6월,처음으로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꼈다.섬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위생소를 찾았으나 진통제 몇알만을 얻었을 뿐이다.암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 병을 앓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통증은 계속됐고 마침내 9월의 어느날 밤,顔은 왼쪽 다리 뼈가 저절로 부서지는 격심한 통증에 까무러치고 말았다. “가끔 오른쪽 다리 뼈도 부서지는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깨어나곤 해요.그럴 때면 내가 이곳 타이베이의 병원에 왜 오게 됐는지 한심스럽고 핵폐기물 저장소가 괴물처럼 생각돼요.” 顔은핵폐기물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았다.“핵폐기물을 북한으로 보낸다는 것을 최근 신문을 보고 알았어요.또 나같은 사람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불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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