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로 3분기에 2조원 날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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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증시 하락장에서 국내 주식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가 입수한 ‘분기별 수익금 및 수익률 현황’ ‘2008년 3분기 국내주식 운용성과 및 관리내역 보고서’에 따르면 주가 하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올 7~9월 3개월간 국내 주식투자로만 2조원대 손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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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노후자금이 뭉텅이로 증발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징후가 가시화되던 올해 7~9월, 국내 주식에 수 조원을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단독입수] 국민연금 주식 운용성과 보고서 #공격적 투자 나섰다 큰 손실 … 공단 측은 “저가 매수 전략” 해명

당시는 ‘9월 경제위기설’이 증폭하고 있을 때다. “주식 투자에 신중하라”는 증권 전문가들의 분석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시장의 움직임과 반대로 공단은 왜 막대한 기금을 주식에 투자했고, 얼마의 손실을 본 것일까?

공단의 국내 주식투자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들이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직접 투자와 자산운용사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이다. 올 9월 말 현재 국내 주식 직접 투자액은 대략 25조원, 위탁운용액은 16조7411억원이다.

공단이 올 3분기(7~9월) 신규로 직접 투자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규로 위탁운용한 금액은 2조1473억원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양쪽 모두 막대한 손실만 기록했다. 본지가 입수한 공단의 ‘분기별 수익금 및 수익률 현황(분기별 현황)’에 따르면 올 3분기 직접 투자한 국내 주식의 손실액은 1조8000억여원에 달한다.

분기 수익률은……-20.29%로 나타났다. 이는 1분기 1조2491억원, 2분기 1950억원 손실액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분기 수익률도 올 들어 최악이다. 1분기, 2분기는 각각 -7.84%, -8.90%였다. 문제는 ‘기금의 효율적 투자 및 관리’라는 명목으로 자산운용사에 위탁운용한 국내 주식마저 큰 손실을 봤다는 점이다.

본지가 입수한 ‘국내 주식 위탁운용 성과 및 관리내역 보고서(위탁운용 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에만 278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고, 수익률은 -12.98%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증시가 연일 추락하던 7~9월 사이, 공단은 국내 주식에 직접 또는 위탁 투자했다가 총 2조78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국민연금의 ‘헤지펀드’식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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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큰 규모의 손실이다. 웬만한 지자체에 배정되는 국가 예산의 2~3배에 달할 정도다. 예컨대 올해 울산시에 배정된 국가예산은 3851억원이다. 군산시의 예산도 6177억원에 불과하다. 여기엔 새만금 관련 예산 4022억원이 포함돼 있다. 공단 측은 “저가 매수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저가 매수였다면 10월 이후 주가가 반등해야 한다. 그래야만 바닥에서 매수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런데 올해 9월 -1.78%를 기록한 코스피지수는 10월 들어 -23.13%를 나타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 A씨의 말이다. “기금은 안전투자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주가가 바닥을 때리고 상승곡선에 있을 때 매수하는 게 옳은 방법이다. 이쯤이 바닥이라고 예측한 후 이른바 몰빵 하는 것은 헤지펀드나 하는 것이다. 누가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겠는가?”공단의 기금관리는 안전이 우선인데, 주가하락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국내 주식투자에 나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공단은 비교적 안정적 투자가 가능한 채권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현재 공단 기금이 국내 채권에 위탁된 금액은 8조4193억원. 하지만 올 3분기 신규자금 투자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식에 막대한 기금을 투자한 것과 대조적이다. 더욱이 이 기간, 위탁채권의 운용수익률은 1.16%로 주식보다 월등했다.

리스크가 큰 주식에는 집중 투자하고,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채권은 소홀히 한 것은 투자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투자방식도 문제다. ‘위탁운용 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 신규 투자(2조1473억원)된 기금 중 액티브형(active) 펀드에 가입된 비중이 91.6%에 달한다. 패시브(passive)형 펀드는 8.4%에 머물렀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액티브형은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이 중시된다. 패시브형은 인덱스 등 지수가 주요 고려 대상이다.

투자비중 높인 업종 줄줄이 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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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관리공단이 국민의 노후자금을 주식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사진은 국민연금 내역을 확인하고 있는 가입자.
용어에서 보듯 액티브형은 공격적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증시가 호황일 땐 액티브형이 유리하지만 증시 폭락기엔 부메랑을 맞기 십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가가 하락할수록 패시브형을 택해 안정을 꾀하는 게 순리”라며 “국민의 노후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요량이었다면 금융위기가 몰려오고 있던 올 3분기에는 패시브형에 무게중심을 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증시 하락장에서 공격적 투자에 나선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액티브형, 패시브형의 3분기 수익률은 각각 -13.08%, -12.41%로 0.67% 차이를 보였다. 투자된 업종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업종에만 집중 투자됐기 때문이다.

‘운용성과 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 액티브형의 투자가 확대된 업종은 운수장비, 금융, 종이목재, 화학, 의약품, 철강금속 등이다. 그런데 10월 이들의 주가는 일제히 폭락했다. 운수장비는 가장 큰 폭인 -32.60%, 금융업은 -31.57%를 기록했다. 종이목재와 화학은 각각…… -28.28%, -25.69%를 나타냈고, 의약품(-24.82%), 철강금속(-23.51%)도 폭락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집어 삼키기 시작한 10월, 대부분 업종이 폭락했다. 하지만 올 3분기 투자 비중을 높인 상위 10개 업종 중 코스피지수 10월 평균 하락률(-23.13%)보다 낮은 곳이 7개에 달했다는 점은 운용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무리하게 투자에 나선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연기금이 주가를 떠받치는 안전판 역할을 하는 것은 일부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최악의 급락장에서 국민의 노후자금을 쏟아 부은 게 과연 적절했는지 논란이 많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외국인 셀 코리아(sell korea)’를 촉발시켰다는 비판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연기금이 증시에 대거 투입되면서 외국인들이 연기금이 주가를 올려놓는 시기를 봤다가 파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기금이 투입되면 약속이나 한 듯 외국인 셀 코리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는 위탁운용 보고서에 나온 ‘국내 주식 위탁 분기 매매현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올 3분기 연기금이 순매수한 종목은 삼성전자(1886억원), 신한금융지주(1060억원), 포스코(998억원), SK텔레콤(922억원), 현대자동차(703억원) 등이다. LG전자(687억원), 삼성물산(605억원), 삼성증권(589억원)에도 많이 투자됐다.

공교롭게도 이는 같은 기간, 외국인 순매도 종목과 대부분 일치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3분기 삼성전자(1조8185억원), 포스코(8907억원), LG전자(5739억원), SK텔레콤(4370억원), 현대자동차(2363억원)를 대량 매도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우량 종목이기 때문에 외국인 셀 코리아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분석도 가능하지만 연기금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도 한몫 톡톡히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국인 ‘셀 코리아’의 피해는 크다.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시장 이탈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달러 가뭄 현상이 초래되고 있다. 덩달아 환율까지 치솟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 심리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국내 증시는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외국인 ‘셀 코리아’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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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3분기에 큰 손실을 기록했음에도 주식투자 확대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박해춘 이사장은 현재 18% 수준인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재임기간이 끝나는 2012년까지 40%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투자공사가 이미 큰 손실을 보고 발을 뺀 월가의 부실금융기관에도 지분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88년부터 현재까지의 누적수익률을 보면 주식이 8.5%, 채권이 5.5%”라며 “수익률을 단 1%만 올려도 적립금 고갈 시기를 9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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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지금은 증시 하락세이기 때문에 비판 받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분명히 주식 투자가 옳은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수익률이 낮은 채권만으론 적립금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올 3분기에만 국내 주식투자만으로 2조원대의 손실을 기록해 오히려 적립금을 깎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기금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공단 측은 주식시장을 교란한다는 이유로 구체적 자산운용 전략을 철저하게 비공개한다. 국회에 자료를 제출할 때조차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서명까지 요구한다. 이에 따라 국민이 연기금의 운용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아예 차단돼 있다.

증권 전문 이성희 변호사는 “국민연금의 활용에 대해 국민에게 상세하게 알리고 동의를 받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민의 피 같은 돈이 정부기관의 눈먼 돈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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