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적자, 나라 살림 견딜 만할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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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22면

정부가 당초 계획보다 10조원 이상 재정지출을 늘리는 내용의 2009년 수정예산안을 제출한 데 대해 정치권과 학계의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경제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세입 기반마저 위축되는 상황에서 자칫 재정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들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부터 발효되는 국가회계법 규정에 따라 기존의 국가채무(debt)와는 별도 개념의 국가부채(liability)가 산출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국가채무엔 포함하지 않았던 공적연금 부족액 등이 일부 포함될 예정이어서 국가예산 편성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2009년 예산안 쟁점 ① 국가채무

내년 적자국채 17조, 외환위기 때보다 많아
정부 발표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내년에 350조원에 달하게 된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말 60조원에 불과하던 게 계속 늘어 2004년에는 200조원을 넘었고 올해에는 300조원을 넘어섰다.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채무 총액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경제발전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2년 19.5%에 불과하던 것이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5년에는 30%를 넘었다.

대규모 적자예산이 편성되는 내년에는 34.3%에 달할 전망이다. GDP 대비 31% 정도에서 국가부채를 억제키로 한 당초 정부 계획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7.1%(2006년 기준)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코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채무 증가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 앞으로 급증할 복지 수요와 통일비용 등을 감안하면 재정 문제가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게 재정학자들의 견해다. 최광 외국어대 교수는 “선진국의 예를 보면 한번 증가된 국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고,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부채 증가 속도는 매우 우려스럽다”며 “재정지출을 GDP의 일정 비율 이내로 묶는 총량규율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최근 보고서에서 “국가채무 비율이 외국보다 낮다는 사실만 강조할 게 아니라 그 비율이 어느 정도 증가 추세냐, 우리 경제가 그 국가채무를 감내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느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4년부터 실질적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대상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해 산출)는 적자로 돌아섰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매년 수조원대의 적자국채가 발행되고 있다. 20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는 내년에는 적자국채 발행 규모가 외환위기 때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내년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17조6000억원에 달해 98년 적자국채 규모(11조7000억원)을 넘게 된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3대 ‘부자 감세안’인 종부세 개편, 법인세·상속세 인하는 반드시 철회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아직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국가채무 범위 문제도 조만간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국가채무 문제는 참여정부 시절부터 학계와 언론계를 중심으로 정부 통계가 축소됐다는 점이 꾸준히 지적됐지만 정부는 이를 강하게 반박해 왔다.

현재 정부의 공식 통계는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원리금 상환 의무를 부담하는 확정채무만 국가채무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증채무, 4대연금의 잠재 채무, 중앙은행 채무, 공기업 채무 등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모두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국가채무에 포함시키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연금 채무다. 군인연금법·공무원연금법에 따라 이들 연금과 기금이 적자가 날 경우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 주도록 돼 있다. 실제로 군인연금과 공무원연금의 경우 올해 2조원이 넘는 국민의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웠다. 내년에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게 돼 있다. 국민연금의 부실도 결국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과 달리 OECD 기준은 국가채무에 이 같은 공적연금 부족액을 포함시키고 있다.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정부의 수익형 민자사업(BTO)도 사업 계약 때 손실액의 일정 부분을 정부가 보전해 주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 보증채무로서 국가채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150조원 규모의 통화안정증권도 형식상 중앙은행 채무지만 실질적으로 정부에 귀속된다는 점에서 국가채무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통화안정증권은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몇 개 국가에만 있는 제도다.

‘태풍의 눈’ 국가회계법
이런 가운데 내년 국가회계법이 시행되면서 국가채무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국가회계에 복식부기가 도입되면서 기존의 ‘국가채무’와 별도로 ‘국가부채’가 계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즉 현재의 국가채무는 현금주의에 기초해 정부가 직접적 상환 의무를 지는 확정 채무인 반면 국가부채는 발생주의에 기초해 지출 가능성이 높은 정부의 모든 경제적 부담을 일컫는다. 이에 따라 새로운 국가부채 개념에는 한국은행이나 공기업 부채는 여전히 제외되지만 공적연금 부족액과 BTO 손실 보전액 등은 포함될 예정이다. 이렇게 계산할 경우 국가부채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IMF 지침에 따라 국가 간 비교 기준이 되는 국가채무와 별도로 국가부채를 계산하려는 것은 단지 재정 운영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국가부채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면서 한국 정부의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당초 2009년 국가회계법 시행에 따라 2010년 국가채무 규모를 공개하도록 돼 있는 일정을 2년 늦추는 내용의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 복식부기 도입에 따라 2년 정도의 시범 운영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국가부채 논란에 따른 정부의 국제 신인도 저하와 시장의 충격도 감안한 듯하다. 이와 함께 기획재정부는 최근 강만수 장관의 지시로 국가부채에 포함시킬 공적연금 부족액과 BTO 보전액 범위 등에 대한 정밀 연구에 들어갔다.

국회 예산정책처 이남수 재정정책분석팀장은 “공적연금의 재정 부실이 심각한 상황에서 복지 수요는 늘고, 세계적인 감세 경쟁으로 세입 기반도 위축되고 있는 만큼 국가채무 관리계획을 보다 적극적으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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