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예산’ 특수활동비 또 말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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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수증 없이 사용할 수 있어 지난 정부에서 계속 논란이 됐었던 정부의 ‘특수활동비’가 현 정부에서도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기획재정부가 18일 국회에 제출한 2009년도 특수활동비 예산 현황에 따르면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 예산 총액은 지난해 8509억원보다 115억원 늘어난 8624억원에 달했다. 부처별로는 예산 전체가 특수활동비로 분류되는 국가정보원이 485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국방부(1640억원)·경찰청(1269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청와대와 감사원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221억원과 43억원을 책정했고, 법무부는 지난해보다 10억원 늘어난 280억원을 신청했다. 이 중 검찰 몫이 203억원이었다.


매년 예산안 심의 때마다 특수활동비 항목을 놓고 충돌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번에 공수가 바뀌었다. 민주당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이날 “정부가 말로는 예산을 10% 절감하겠다면서 영수증 없이 쓰는 돈을 115억원이나 늘린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며 “대폭 삭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까지 “대표적인 불투명 예산”(이한구 의원 등)이라고 삭감을 요구했던 한나라당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박영선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사기업이나 공기업이 수백억원씩 영수증 없이 사용한다면 검찰이나 경찰·감사원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정작 검·경과 감사원이 수천억원을 지출 내역도 기록하지 않고 사용해 온 관행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다소 모호한 입장이다. 예결위 한나라당 간사인 이사철 의원은 “장관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야당 때의 입장을 크게 뒤바꿀 생각은 없지만 왜 증빙서류 없는 예산이 필요한지 정부 쪽 의견은 충분히 들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는 19일부터 예결특위를 가동해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특위 심사를 위해 각 상임위에 "19일 오전 10시까지 예산안 예비심사를 마치라”는 공문을 18일 보냈다. 하지만 10개 상임위의 예산안 심의가 난항을 겪고 있어 사실상 올해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 2일)을 넘길 수밖에 없게 됐다. 지난 10년 동안 국회가 법정시한을 지킨 것은 2002년 한 번뿐이었다.

임장혁·선승혜 기자

◆특수활동비=예산을 어디에 썼는지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묻지마 예산’이다. 구체적인 영수증 첨부 없이 수령자의 서명만으로 현금 사용이 가능하고, 사용 내역은 감사원 결산검사와 국회 자료제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대개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범죄수사나 정보수집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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