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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실업과 오바마의 ‘아버지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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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아버지 되기는 쉽다. 그러나 아버지답기는 얼마나어려운가. 아버지가 변변치 못해서 자신이 이 꼴이라며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한다. 이때마다 아버지들은 주눅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산을 쌓고 명예를 얻고 싶지 않은 아비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오바마는 1961년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흑인 아빠, 백인 엄마는 두 살 때 헤어져 제 갈 길로 가버리고 아이는 외할머니집에 홀로 내버려졌다. 오바마가 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은 열 살이 되어서였다. 지팡이를 짚은, 키 크고 마른 흑인 남자가 오바마 앞에 나타났다. “배리야, 오랜만에 너를 보니 좋구나. 좋아.”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정겨운 아버지 목소리였다. 아버지와 함께 지낸 한 달. 그 시간 아버지는 오바마에게 자유를 위해 영국인들에게 맞서 꿈을 잃지 않고 싸워 마침내 독립을 쟁취한 케냐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때부터 오바마는 하버드대 박사 출신 인권운동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자신이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어렴풋이 꿈을 품게 된다.

어린 오바마 가슴에 한 자락 꿈만을 심어 주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소식에 오바마는 글을 쓴다.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엌에서는 달걀이 타고 있다. 그 냄새를 맡으며, 벽에 나 있는 균열이 몇 개 되는지 세면서, 나는 내가 막 경험한 상실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보려 애를 썼다.”

오바마는 하와이와 인도네시아를 오가는 유년기,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의 재혼과 실패가 주는 불안정과 정체성의 혼란, 환경적 열등감에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단 한 번 만난 아버지에게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 오바마는 눈길을 돌려 이웃들의 고민과 아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오바마는 81년 옥시덴탈 대학 교내지에 아버지를 추억하는 시 한 편을 발표한다. ‘널찍한 그러나 망가진 의자/군데군데 재로 얼룩진/의자에 앉아/아버지는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시네/아버진 시글매 위스키를 또 한 잔 비우며, 묻네/나와 무엇을 하려 하니?/풋내 나는 애야…’.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당선 3년 만에 ‘오바마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마침내 2008년 미국 대통령으로 탄생한다.

젊은 실업자가 150만 명에 이른다 한다. 대기업이 아니면 차라리 놀고 먹겠다며, 금력권력 출세 못한 아버지를 원망한다. 이들이 거부하는 일자리에는 외국 젊은이들 100만 명이 들어와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젊은이여, 어느 아비라고 크게 출세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대는 오바마보다 더 불우한 환경이었는가. 조개 속 진주는 병소(病巢)이면서도 가장 숭고한 업적이듯이, 아버지는 내 핏속에서 소용돌이와 열병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이르렀던, 곧 이르게 될 내 생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의미이기도 하다. 젊은이여, 그대도 미래의 아버지다. 오늘의 아버지보다 분발하라.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