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헐고 주차장 만드니 집값도 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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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2동 왕재산2길. 빼곡히 들어선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 사이로 난 폭 6m의 이면도로가 시원해 보인다. 이 골목에 있는 주택 중 절반 이상이 대문과 담장이 없다. 지난해 7월 골목의 주택 20채 가운데 11채가 대문·담장을 허문 후 주차장을 만드는 그린파킹 사업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 사업으로 새로 생겨난 주차면은 13개. 공사에 드는 비용은 모두 시와 구청에서 부담해줬다. 주민 신순옥(65)씨는 “골목의 주차공간이 넉넉해지자 이웃 간에 주차 시비가 없어진 건 물론 골목 집값까지 올랐다는 얘기가 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그린파킹 사업이 연말로 만 5년이 된다. 2004년 초 시작된 사업은 올해 9월까지 서울시 전역에서 2만8760면의 주차면을 확보, 주차난 해소에 톡톡한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 말 서울시가 사업 참여자 468명을 설문한 결과 82.7%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린파킹 사업이 골목길 주차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담장과 건물 사이가 좁아 그린파킹 사업을 시행조차 할 수 없는 노후 주택가도 많다.

서울 양천구 목2동 왕재산2길 골목의 한 주택. 지난해 7월 담장을 허물어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그린파킹 사업을 시행하기 전에는 주차할 곳이 없었으나(上), 사업 시행 후 승용차 두 대를 주차할 공간이 생겼다. [양천구 제공]


◆골목 주차난 해소 역할=그린파킹 사업은 1999·2000년 주택가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 때문에 화재진압이 늦어지는 등 사고가 잇따르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그린파킹 사업은 차 댈 곳이 없으면 승용차를 구입하지 못하게 해 담장을 스스로 허무는 주택이 많았던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시와 자치구 입장에선 빌딩형 공영주차장을 지을 경우 토지수용비 등으로 주차면 한 개당 평균 5000만원이나 들지만, 그린파킹 사업은 6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장점이 있다. 내년 서울시는 300억원을 들여 4500개의 그린파킹 주차면을 확보할 계획이다.

시는 2006년부터 골목의 일부 주민이 그린파킹 사업을 신청할 경우 전체 가구의 50% 이상이 동참하도록 유도한 뒤 골목 자체를 단장하는 녹색주차마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업 불가능한 곳도 수두룩해=양천구 왕재산2길에서 5㎞ 정도 떨어진 신정1동 단지중앙2길 골목. 지은 지 20년 가까운 2∼3층짜리 다세대주택들 사이로 난 폭 4m 도로는 주차·소방도로 확보에도 역부족이다. 대문이나 담장을 허물더라도 주차장이 나올 만한 공간조차 없다. 올 3월에 이사 온 주부 배모(64)씨는 “가까운 공영주차장마저 자리가 없어 매일 밤 걸어서 20∼30분 거리인 양천구 청사 주변에 주차하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골목 같은 경우엔 주민들의 주차 불편을 덜어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 양천구 그린파킹 담당 안재성 주임은 “4, 5년씩 걸리는 재개발·재건축이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평가한 양천구의 그린파킹 성적표는 25개 자치구 중 중상위권(공동 11위)이다. 그런데도 담당 인력 부족 등으로 배씨 같은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파악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공사비는 시와 구청에서 전액 부담하지만, 대문이나 담장을 허물어야 하기 때문에 방범문제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거부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경원대 김형철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주차공간이 없으면 차를 사면 안 된다는 시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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