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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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날 맥은 집에 두고온 서류를 찾으러 현관으로 들어섰다.한낮이었다. 혼자서만 살던 버릇으로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집안으로들어서자 곧장 서재로 가 서류를 가방에 넣었다.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외출한 것이거니 여기며 집을 도로 나서려는데 침실 쪽에서 낮은 음악소리가 들렸다.달콤한 경음악이었다.곡명은 알 수 없으나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다.낮잠 버릇이 있는 여자다.노래 들으며 낮잠이라도 자는가 싶어 문 을 열었다.
그러나 그곳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알몸의서양 여인이 알몸의 아내를 애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약혼했을 무렵 자기 친구라며 아내가 소개해 준 여인이다.뭘하는 누구인지 캐묻지도 않은채 동창이라는 것만 알고 귀흘렸다.그후 맥 내외 앞에 한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 그녀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기억에 남을만큼 특색이 있는 여자도 아니었다.단지 특징이 있다면 목이 쉰듯한 허스키 소리와 남자처럼활달한 악수 태도였다고나 할까.
그 여자가 알몸으로 내 집 침실에 와있는 것이다.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등지고 앉아 아내의 은밀한 곳을 애무하고 있어 맥이 방문을 연 것도 몰랐다.아내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으며,스테레오의 음악소리 때문에 맥이 들어선 것을 깨닫지 못했다.
망연자실(茫然自失)한채 서 있었다.입을 뗄 수도 없었고 발을뗄 수도 없었다.그대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몇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는지도 몰랐으나 그새 맥의 망막에 뚜렷이 인화(印畵)된 것은 아내의 더 할 나위 없이여자다운 모습이었다.
그처럼 감미하고 황홀한 아내의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충격으로 맥은 비틀거렸다.
인기척에 갈색머리 여인이 뒤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맥은 그제서야 그녀가 아내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맥은 이중으로 충격을 받았다.
아내로부터 그녀를 소개받은 것은 결혼 전의 일이다.그렇다면 아내는 결혼 전부터 이 여인과 이같은 비정상관계를 맺어 왔단 말인가.아내가 한사코 뉴욕으로 와서 살지 않았던 연유를 그제서야 알 듯했고,맥과의 밤살이에 늘 불만족스러워했던 까닭도 알 것같았다.필경 아내의 육신은 진한 애무에 길들여져 있었을 것이다. 친구의 비명에 아내도 놀라 몸을 일으키더니 얼른 이불 시트를 젖히고 그 속으로 숨었다.흡사 누에고치 같았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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