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비만을 부르는 보이지 않는 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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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호 34면

최근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접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사이언스 데일리’ 10월 17일자를 통해 발표한 “뇌에서 도파민이 작용하는 보상회로가 약화되는 것이 비만을 유발한다”는 소식이었다.

원래 도파민이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로, 신경세포를 흥분시키고 기분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맛있는 음식은 좋은 기분을 유발시키는 대표적인 자극 요인이기에, 맛있는 음식은 도파민 분비를 자극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유발되는 즐거운 정도는 개인마다 다른데, 이는 도파민 수용체의 개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의 양은 같아도, 개인이 가진 양동이의 개수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연구팀은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 이렇게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맛있는’ 밀크셰이크를 마시게 하고 뇌가 활성화되는 정도를 MRI를 이용해 관찰했다. 그랬더니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뇌의 선조체(dorsal striatum) 부분이 활성화되는 정도가 뚱뚱한 사람이 마른 사람에 비해 낮았다.

이렇게 활성화 정도가 낮은 사람들을 골라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중 다수에서 DNA의 특정 부위에 도파민과 결합하는 수용체의 수가 적은 특성을 가지는 A1 대립유전자를 가지는 것으로 측정됐다. 그리고 1년여간의 추적연구 끝에, MRI에서 선조체 부분의 활성화 정도가 낮았던 사람일수록, 그중에서도 A1 대립유전자를 가진 사람일수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뚱뚱해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해 뇌 선조체의 기능 저하가 맛있는 음식에 대한 민감도를 떨어뜨려 과식과 비만을 유도하며, A1 대립유전자의 존재는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비만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흔하면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다. 지금까지 비만은 대개 체내에 유입되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에너지보다 많아서 일어나는 에너지 불균형의 문제였다.

그런데 애초에 에너지 유입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를 규명했더니 그것이 ‘우울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최근에 발표된 조사를 보면 한국인은 웃음에 인색해 하루에 평균 90초 정도 웃는 반면 24시간 중 무려 3시간을 근심하는 데 할애한다고 한다. 인간은 즐겁기보다 우울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우울함은 개체의 생존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의 보이지 않는 손은 교묘하게도 우리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거나, 혹은 너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생존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도파민과 같이 쾌락을 가져오는 호르몬들을 분비해 건강과 생존을 도모하도록 만들어 두었다.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먹는 것, 특히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뇌로 하여금 도파민을 분비할 수 있게 하는 근본 자극이 된다. 하지만 이 보상회로가 고장나게 되면, 우리의 몸은 부족한 쾌락을 찾기 위해 ‘오버’하게 되고, 이는 쉽게 과식과 비만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울함을 털어버리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신체의 균형을 잡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일 때-는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어쩐지 우울한 날이면 맛있는 음식을 양껏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풀어지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우울함이 몸까지 무겁게 만들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면, 즐거움을 얻는 각자의 창구들을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 가뜩이나 찬란했던 햇빛마저 줄어들어 우울증을 가중시키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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