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폭로해야 아는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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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 사건을 보면서 딱하게 생각되는 것은현 정부가 늘 부패척결을 외치면서도 실제 부패를 척결하는 노하우 또는 실천의지에 있어선 별로 발전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李씨의 부패에 대해 정부는 놀라고 분노하며 배신 감을 거듭 표하고 있지만 李씨 같은 사람을 3군(軍)을 지휘하는 합참의장에앉히고 국방장관까지 시킨 정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왜 李씨사건 같은 게 터졌으며 반성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부는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안타깝게 보이는 점은 정부가 李씨에 관해너무 몰랐다는 사실이다.李씨가 공군참모총장이 되기 위해 대통령의 딸에게 보석을 사다 바친 인물인줄 알았다면 그를 합참의장에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국방장관이 무기중개상 에게 덜미가 잡혀 끌려다녔다는 것을 좀더 미리 알았던들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요컨대 정부로서 몰라서는 안 될 일을 몰랐던게 문제였다.다시 말해 국가와 정부의 운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와 실태파악이 없었던 것이 정부에 오늘의 이 큰 상처를입힌 원인이 된 것이다.
정부가 자기네 국방장관에 대해서까지 그 됨됨이와 행적에 깜깜했다면 그 밑의 차관.국장의 일을 어떻게 알 것이며,하물며 말단관리들에 관해서는 알 턱이 없을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모르고 있으니까,정보를 못 갖고 있으니까 밑의부패와 복지부동(伏地不動)도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현 정부는 걸핏하면 과거정권에서는 부패가 관행이 됐다고 말한다.옳은 말이다.그렇다면 지난 시절 뼈가 굵어진 사람일수록 중용(重用)에 앞서 도덕성과 전력(前歷)의 검증을 더 철저히 해야 옳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데 문제가 있었다.벌써 정부는 임기초에 사람을 모르고 썼다가 혼이 난 일도 있었다.임명한지 며칠도 안된 사람을 서둘러 바꾼 쓰라린 경험을 했다.뿐 아니라 가신(家臣)출신 장학로(張學魯)사건도 있었다.
이형구(李炯九)전노동장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그의 산업은행총재 시절 전력을 제대로 검증했던들 불상사는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부패를 척결한다면서도 인사에 있어 도덕성이나 전력의 검증을 소홀히 함으로써 인사실패가 연속되고 결과적으로 공직사회의 청렴기풍도 조성하지 못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이다.부패전력이 있는 사람을 기용하면 그주변이나 아랫사람에게 「부패는 문제가 안된다」는 신호를 정부가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진급을 위해서는 무기중개상과도 짜고 보석도 사다 바치는 사람을 군요직에 기용 하면 후배 장교들에게 바로 그런 식으로 처세하라는 모범과 교훈을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공직부패에 대해 더이상 「몰랐다」고 해서는 안된다.요직인물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들의 업무수행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알자면 사전검증 기능을 가져야 하고 업무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지시만으로는 안된 다.지시가 이행되는지를 살피고 챙기는 기능도 있어야 한다.언제까지 비서 또는 브로커가 폭로한 후에야 정부가 알고 허둥댈 것인가.
검찰권만으로는 부패척결이 안된다.물론 부패분자는 엄단해야 마땅하다.하지만 불거져나오는 사건별로 단발적(單發的) 사법처리를하는 것으로는 부패가 없어질 수 없다.거대한 부패관행이 그대로있는 한 들켜서 사법처리당하는 측만 「운수불길 」로 치부될 뿐「안 들키는」 기술의 고도화(高度化)만 촉진할 염려가 다분하다. 청렴기풍을 정책적으로 조성하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청렴관리는 표창하고 승진.영전시키는 혜택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대통령이 불러 식사도 함께 하고 푸짐한 부상(副賞)으로 격려도 해야한다.그리하여 이 정부에서 출세하고 승진하려면 청 렴이 첫째 조건임을 가시화(可視化)하고 그런 인식이 공무원 뇌리에 박히게해야 한다.그리고 인사청문회의 단계적 도입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대통령의 공직임면권을 국회가 간섭한다고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해당공직자의 도덕성과 업무능력에 대해국회가 책임을 분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앞으로 대통령선거와 임기말이 다가올수록 부패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다시 폭로가 있고서야 엄단한다고 할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실천적 부패추방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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