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불황이라도 □ 하면 지갑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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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 이어 부자들까지 지갑을 닫으면 진짜 불황이다. 부자들은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쇼핑을 줄이지 않았지만 이제 달라지고 있다. 주요 백화점들이 큰 손님이라고 관리하는 ‘VIP 고객’의 소비가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백화점의 VIP 구매금액 신장률은 이달 들어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8월만 해도 증가율이 전년 같은 달에 비해 16.1%였지만, 환율과 주가가 요동치기 시작한 지난달 3.2%로 급락했다. 이 백화점은 연간 20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을 ‘VIP’로 분류해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연간 35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을 ‘VVIP’로 우대하는 현대백화점의 경우 이들의 1인당 소비 신장률은 지난달 0.8%에 불과했다. 연중 최저치다. 정지영 마케팅팀장은 “상반기에 6000명 정도를 VVIP로 분류했는데, 지난달부터 이들의 구매액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전했다. VIP 중에서도 상위 구매 순위 999명을 ‘트리니티’ 고객으로 별도 관리하는 신세계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의 1인당 구매금액 신장률은 지난달부터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제일기획이 19일 내놓은 조사자료는 이런 침체 분위기를 뒷받침한다. 그러면서 소비자 성향을 분석해 유통업계의 대응책까지 제시했다. 지난달 수도권 20~49세 남녀 300명을 상대로 설문·면접 조사를 한 결과다. 이들은 현 시점을 ‘심각한 불황’(81%)으로 인식해 지난해보다 소비 규모를 평균 68% 수준으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위축은 사업이나 고용안정, 소득의 불확실성과 불안감 탓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지갑을 여는 비결이 있다. 불황에 소비가 늘어나는 분야도 있다. 제일기획은 ‘불황 5계(計)’라는 침체기 마케팅 전략을 제시했다. 이형도 차장은 “소비자 불안심리를 간파하고 신속하게 이에 대응하는 기업은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보고서 요약.

#1.이성적 설득보다 ‘원초적 본능’ 소비자는 경제 압박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감각적인 것에 끌리는 경향을 보인다. 설문 결과 ‘단순하고 감각적인 것에 끌린다’(74%)거나 ‘오락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본다’(62%)는 응답이 많았다. 심층면접 대상인 10여 명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서 “취업 스트레스로 아무 생각 없이 볼 만한 액션영화를 즐긴다”는 대학생(22세)이나 “이효리가 좋아진다. 심각한 건 뉴스로 충분하다”는 회사원(36)의 심리가 이를 대변한다. ‘처음처럼’ 소주는 가수 이효리를 모델로 섹시 코드 광고를 한 것이 주효했는지 시장점유율이 2005년 7%에서 올 7월 24%로 뛰었다.

#2. 보상심리를 채워주어야

턱턱 돈을 쓰지 못하는 데 대한 보상심리가 ‘나를 위한 작은 소비’를 촉진한다.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작은 사치를 누리고 싶은 심정이다. 고급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주류·담배 등 기호식품, 중저가 브랜드 옷·화장품·액세서리 등이 잘 팔리는 것이 그런 예다. 1만원이 넘는 고가 아이스크림 메뉴를 내놓는 회사들의 상반기 매출이 급증했다.

#3. 젊은 층은 불황에 둔감

불황이 모든 세대에 똑같이 다가오는 건 아니다. 가족 부양 의무가 없고, 유행과 외모에 민감한 20대는 불황의 영향을 덜 받는다. 8월 국내산 맥주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9% 는 데 비해 젊은 층이 선호하는 수입맥주는 51% 급증했다.

#4. 가족 마케팅이 먹힌다

가족을 위해서는 어려워도 써야 한다. 어려울수록 가족을 찾는 심리 때문이다. ‘개인 소비에 부담을 느낀다’(86%)는 응답자도 ‘가족을 위한 소비는 포기할 수 없다’(75%)고 답했다.

특히 ‘양육비·자녀교육비는 유지하겠다’는 응답이 80%에 달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 커피를 타거나(동서식품 맥심), 외식이나 여행을 하기로 가족과 약속하거나(신한카드), ‘집은 엄마다’라는 테마(래미안) 등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광고가 유행이다. 닌텐도 위(Wii)는 가족이 함께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의 광고를 내보냈다.

#5.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라

불황기에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을 더 따질 것 같지만 반대인 경우도 많다. 자주 사지 못하니 한번 사면 믿을 만한 걸 사게 되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값이 조금 비싸도 신뢰가 가는 브랜드를 택한다는 것. 제일모직 빈폴은 예년엔 고급 상품군에 속한 캐시미어 스웨터를 올해는 기본 아이템으로 내놨다. 삼성패션연구소의 노소영 책임연구원은 “‘제대로 된 옷을 사서 오래 입자’는 소비심리를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박현영·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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