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노벨상 이론과 은행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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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조개의 입을 열게 하려면 칼을 찔러 넣어야 하고 의 입을 열게 하려면 돈을 찔러 넣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빈칸에 들어갈 단어로서 「정치가」나 「변호사」를 생각할 수도 있고,혹은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는 전직 국가원수를 염두에 두어 「대통령」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말은 정보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으면서 그다지 협조적이지 못한 사람한테서 도움을 얻으려면 무언가 인센티브(유인)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이 구절은 금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인 윌리엄 비크리 교수와 제임스 미얼리즈 교수의 이론을 간결하게 요약해 주고 있다.
이들의 이론과 그 이후 발전한 정보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이 거래나 계약을 할때 쌍방간에 보유한 정보의 차이가 크게 되면 즉 정보가 비대칭(非對稱)적이 되면,해당 기업이나 산업이 효율성을잃게 되고 시장의 실패가 일어난다고 지적하고 있 다.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인센티브 제도를 고안해 제시하고 있다.
정보의 차이가 문제를 일으키는 까닭은 사람들이 남은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실을 활용(또는 악용)함으로써 도덕적으로 해이(moral hazard)해지기 때문이다.최근 경남은행에서 1백억원대 금융사고가 발생한 것은 차주(借主)의 사기 행각에 정보부족의 은행이 말려들었기 때문이다.그렇게 악랄하지 못한 보통사람의 경우에도 화재보험이나 손해보험에 들게 되면 불조심이나 문단속이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자동차보험에 들고 난 사람은 운전이 더욱 부주의해지고 난폭해져서 대형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보험회사로서는 개개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과거통계에 의해 평균적인 요율을 매길 수밖에 없다.보험회사가 손해를 본 후 요율을 올리기 시작하면 결국대부분의 사람은 보험가입을 포기하게 되는 반면 위험인물들만 가입신청을 하게 된다.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마침내 보험시장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 회사의 주주와 사장의 관계를 들 수 있다.주주들로서는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극대화시켜 달라고 전문경영인에게 회사 운영을 맡긴다.그러나 경영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주주들이 제대로 알 수 없고 경영자 자신만이 가장 잘 안다는 정보의 차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것이다.사장이 겉보기와 달리 경영을 태만히 하는등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면(대리인 문제) 회사의 효율이 떨어져 주주나 사장등 거래 당사자는 물론 국민경제 전체에까지 손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로서 보험쪽에서는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 사고때 본인부담금을 올린다든가 무사고가입자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등의 방법이 강구되고 있다.대리인문제의 대응책으로서 미국에서는 전문경영인에 대 해 주식옵션등 경영성과에 연동된 보수를 약속하는 것이 관례로 돼있다.
정보의 비대칭 문제와 관련해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우리나라의 은행산업이다.지금까지는 정부가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하여지나치게 통제와 간섭을 해오는 한편 민간 대주주의 권리를 제한해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은행들은 사실상 임자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챙겨주는 주인이 있어도 대리인 문제등 비효율이 발생할 가능성이 큰데 하물며 제대로 된 주인이 없는 상황에서 경영의 효율성이나 대외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운 일이다.
주주의 발언권이 가장 센 것으로 알려진 신한은행이 경영실적 평가에서 항상 선두에 서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계기로 은행부문의 대내외 경쟁은 더욱 치열해져 갈 것이므로 은행 임직원의 분발을 촉구할 수 있는 제도개혁이나 유인체계 정비가 시급한 과제다.
여담(餘談)이지만 정보의 비대칭문제는 노벨상을 주고 받는 쪽사이에도 존재했던 것 같다.82세의 고령인 비크리 교수는 스웨덴 학술원으로부터 수상소식을 접한지 사흘만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노성태 한화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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