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뛰는방송인>10.MBC음악감독 고병준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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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한잔 걸칠 때도 그의 귀는 줄곧 음악에 쏠려 있다.『이런 분위기면 저 노래도 괜찮군.』 그는 틈틈이 술집의 음악에 귀기울이며 한곡 한곡 평가하기 일쑤다.영화를 볼 때도 유독 음악에만 귀기 울여 그에게있어 영화의 감동은 음악의 감동과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걸 가리켜 「직업은 속일 수 없다」고 말하는 걸까.음악감독 고병준(34)씨.
그를 설명하자면 드라마 제목을 얘기하는 편이 더 빠를 것같다.최근 종영된 MBC 『사과꽃 향기』와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드라마 『애인』이 그것이다.『사과꽃 향기』에 삽입돼 귀를 솔깃하게 하던 아름다운 음악,존 윌리엄스의 『히 워 스 뷰티풀(He Was Beautiful)』.주인공 진수와 경주의 테마로 쓰인 이 음악이 보는 이로 하여금 드라마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는데 한몫했다.최근엔 『애인』 삽입곡이 또하나의 화제.캐리 앤론의 『아이 오 유(I.O.U)』와 로이 오비슨의 『인 드림스』,스콧 매킨지의 『샌프란시스코』등 이 드라마의 삽입곡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들썩이게 한다.
『기혼 남녀의 사랑을 무겁고 칙칙하게 묘사하던 다른 드라마와차별하기 위해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밝은 톤의 음악을 고르려고 애썼습니다.그래서 처음에 고른게 「샌프란시스코」였죠.근데 「아이 오 유」가 더 인기죠.그건 어떤 선배가 골라 준거예요.』 『애인』 음악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그가 이 드라마를 위해 선곡한 곡만 해도 2백여곡.시놉시스(줄거리 초안)를 보고 선곡해놓은걸 다 쓰는건 아니지만 방송전 매회 편집과정에 참여해 음악이 들어갈 장면을 선정하고 곡을 고르는 것이 그의 일이다.그는88년 MBC 『서울 시나위』를 통해 방송 음악일을 시작,이후『사랑과 결혼』『코리아게이트』『부자유친』등 드라마는 물론 『PD수첩』과 『흑룡강』등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음악을 맡았다.그는 요즘 MBC에서 새로 방영될 드라마 『미망』의 음악을맡고 박완서씨의 원작소설을 읽고 있다.음악감독은 극의 테마음악과 삽입곡을 직접 작곡하기도 하지만 감각이 맞는 작곡가와 호흡을 맞춰 작곡 대신 삽입 장면곡과 곡 선정등의 일만을 맡기도 한다.왕년의 인 기가수 고복수.황금심이 그의 부모.그는 고.황부부의 3남2녀중 막내다.모대학 작곡과를 중퇴하고 다방.디스코테크 음악 DJ로 활동했으며 어머니 영향을 받아 탱고.지루박.
룸바.차차차를 섭렵,대한무도협회가 주최한 사교춤대회에서 상을 받은 경력도 갖고 있다.『드라마 혹은 다큐멘터리에서 음악은 양념일 뿐입니다.굳이 음악이 없어도 될 부분은 연기자의 호흡으로만 채우는 것이 중요하죠.침묵의 힘을 인정하는 것,음악의 소중함은 거기서 출발하는 것같아요.』 개인적으로 마할리아 잭슨의 『서머 타임』에 반해 음반을 수집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LP 4천6백장과 CD 3천장을 「가장 소중한 재산」으로 꼽았다.
글=이은주.사진=박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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