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글날과 한자(漢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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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국을 공부하면서 한.중 양국의 제왕(帝王)을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세종대왕처럼 과학적 재능을 지녔다거나 정조대왕처럼 효심과 학문을 겸한 훌륭한 제왕이 중국에는 없었다.
특히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을만큼 문화적일대 쾌거라 할만 하다.세계의 그 어느 나라에 한글처럼 훌륭한문자를 창제했던 제왕이 있었던가.
그래서인지 한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부심은 남다른데가있다.우리처럼 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잊지 않고 기리는 나라도 많지 않을 것이며,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프랑스 국민 못지 않다.그저 한글의 우수성은 「마르고 닳도록 」칭송해도 부족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를 얻고 둘을 잃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겠다.한글의 우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문자 사용에 있어 한글의 홀로서기는 어려운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우리 것이 좋은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터이나 「우리 것만이 좋 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농산물의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외쳤지만 추석 제사상에 중국산 고사리가 오르는 것이 현실이다.절장보단(截長補短)은 이때 하는 말이다.
이야기 하나 해보자.진시황(秦始皇)이 아직 천하를 통일하기 전 일이다.본디 진나라는 서쪽의 미개한 제후국이라 이렇다 할 인재가 없어 역대로 외국 인사를 초빙한 결과 조정은 온통 수입두뇌로 가득 차게 됐다.이를 시기한 자국출신 신하 들이 그들을몽땅 추방할 것을 요구하자 진시황은 이른바 축객령(逐客令)을 내렸다.이 바람에 초(楚)나라 출신 이사(李斯)도 곧 쫓겨날 판이었다.그는 과감하게 축객령의 부당함을 들어 직간했다.유명한간축객서(諫逐客書)가 그것이다.
그는 먼저 역대 진나라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던 상앙(商앙).
장의(張儀)등 외국인사를 하나하나 거론하기 시작해 현재 궁중의금은보화며 궁녀.천리마.악기등 그 어느 것 하나도 진나라의 국산은 없음을 들었다.외국 것을 몽땅 도려낸다면 진나라는 알거지가 될 판이었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점잖게 한마디 올렸다.
『태산이 높아진 것은 한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며(泰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하해가 깊어진 것은 작은 시내도 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 얼굴이 붉어진 진시황이 축객령을 철회하고 오히려 그를 중용함으로써 마침내그의 힘을 빌려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진시황식 절장보단이었다.
한글날에 한자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억설(臆說)처럼 들리겠지만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과 한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진정 한자를 통한 어문생활의 절장보단이 더늦출수 없는 시점에 왔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열 심히 『니 하오 마?(好마?)』를 가르쳐야 할 대학생들에게 한자의 필순부터가르쳐야 한다는 각오는 지레 단단히 해두었던 터라 오히려 담담하다.본고사의 국어 논술시험답안지를 보면 어른 몸집에 유치원생문장이다.
그래도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치자.그러나 자기 사무실 여직원이 「변호(辯護)」두자를 몰라 알려주었더니 변호사를 「변호토」로 읽었다는 한 변호사의 하소연이나 「실세(實勢)」와 「실세(失勢)」를 구별못해 시말서를 썼다는 모 신문사 부 장의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온고지신(溫故知新)은 그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늘 지나치는 「광화문(光化門)」의 한자를 모른다면「조상의 빛난 얼」은 더 이상 빛낼 수 없으며 빙산처럼 다가오는 13억의 중국은 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15년전 대만에 포교하러 오셨던 한 스님의 법어가 생각난다.
『촛불을 두개 밝히면 방은 더 밝아지는 법입니다.』 한글의 호랑이에 한자의 날개를 달아 보자.우리집 준영이는 오늘도 열심히 한자를 익히고 있다.
정석원 한양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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