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28.영화-멜로드라마 대부 더글러스 서크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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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할리우드에서 멜로드라마가 전성기를 맞은 시기는 50년대다.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소위 「황금시대」를 맞은 50년대가 되자 외형적인 풍요의 가운데에서는 혼란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사회의부적격자가 돼버린 퇴역군인들,가정에서 직장으로 진출한 여성들,아버지 없는 불안한 가정,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자식들….
이런 부패의 씨앗을 연애 이야기의 배경으로 설정,통속적인 애정물로 취급되던 멜로드라마를 비평의 대상으로까지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더글러스 서크(1900~87)다.그는 우리에게 비교적덜 알려져 있지만 50년대 극장을 자주 찾았던 관객들은 『순정에 맺은 사랑』(원제 All That Heaven Allows.55년),『슬픔은 그대 가슴에』(Imitation of Life.58년)등의 영화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영화를 예술로만 고집,심각한 영화만 만들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그의 영화는 이해하기 쉬운 대중영화로 특히 주부층관객들에게 큰 인기였다.
제작사인 유니버설은 서크 덕택에 그때서야 워너브러더스나 MGM등의 메이저 영화사와 어깨를 견줄 수 있었다.이런 흥행성공 때문에 사실 그는 현역시절 「최루성 영화감독」이라며 평단으로부터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의 멜로드라마관(觀)은 『사랑이야기가 들어 있는 사회의 환경은 사랑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는 말 속에 들어있다.애정을 전면에,사랑을 방해하는 사회적 조건을 배면에 배치한 서크의 영화는 이후 멜로드라마의 전형으로 인식됐다.
나치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인 감독인 그는 독일 표현주의의 후예로 대단한 스타일리스트였다.
다른 감독들이 사회적 조건의 강조에 치우친 나머지 건조한 현실주의적 영화를 만들어낼 때 그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상징을 화면 곳곳에 배치하며 풍성한 그림을 제공했다.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선 감독으로도 유명하다.망명자 감독에게주어진 것은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숙련되지 않은 스태프,겉멋만든 배우들 뿐이었다.이런 열악한 제작환경을 통제하며 자기의 개성을 고스란히 표현해냈기에 더욱 평가받을 수 있었다.
그가 발굴해낸 스타가 록 허드슨이다.정직.성실.관용을 허드슨의 개성으로 파악한 뒤 자기 영화의 단골 주인공으로 내세워 무명이었던 그를 일약 멜로드라마 전문스타로 키워냈다.
유니버설과의 계약이 끝난 60년 전격 은퇴한 그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 파스빈더 같은 독일 후배감독들의 작업을 지도하기도 했다.
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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