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해군 기밀누출 사건' 한국 입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정부는 한국계 미 해군 문관 기밀서류 누출사건이 한.미 우호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아래 미측과 물밑 접촉을벌이고 있다.
특히 무장공비 잔당 소탕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사건의 파문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4일 미 해군정보국의 컴퓨터 전문가인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金(56)씨가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24건 이상의 기밀서류를 워싱턴주재 한국 해군무관 백동일(白東一)대령에게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부터다.미 언 론들은 이 문서가 아시아.태평양지역 군사.정치 정보사항을 담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자세한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일단 사건을 조기 진화키로 하고 문제의 白대령을 귀국토록 긴급조치했다.
또 외무부 대변인 발표를 통해 『이번 사건으로 한.미 양국간우호동맹관계가 손상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이 우리측 관계자인 白대령을 소환조치한 것은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미측의 주장대로 白대령이 미 해군정보국 컴퓨터전문가인 로버트 金씨로부터 서류를 넘겨받은 것이 실제로 미 국내법 위반인지 여부를 우리측이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白대령을 미리 귀국시킴으로써 외교관 신분인 白대령 추방등 만의 하나 발생할 수도 있는 최악의 사태를 예방하겠다는 생각이다. 정부당국자의 『양국의 체면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태가 수습될 것』이라는 설명은 정부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아직 기소전 단계이므로 조속한 봉합을 기대하는 우리측 희망이 어떻게 나타날지 미지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사건이한.미간에 앙금으로 남아 있으리라는 점이다.
이유는 이번 사건에 미국측의 「고의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는데 있다.
우리 정부가 주목하는 것은 金씨가 체포된 장소와 시점.金씨는지난 24일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부 주최로 버지니아주 포트 마이어스 소재 미군부대 장교클럽에서 열렸던 국군의 날 기념 리셉션장에서 미연방수사국(FBI)요원들에 의해 연행 됐다.
특히 이 사건은 한.미 양국이 북한 무장공비 사건에 대한 대응문제를 놓고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점에서 터져 나왔다.우리측 관계자들은 내심 당혹해 하는 것도 이런 때문이다.
또 우리 국방부가 지난 94년 이래 중단된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제기한 직후라는 점도 주목대상이다.
미국측이 실제로 로버트 金씨 기소를 통해 한국측에 어떤 경고를 주려했는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미 국무부가 그동안 무장공비 사건이 북한의 명백한 책임이라는 입장을 천명하면서도 94년 이후 지속돼온 한반도 기류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장공비 사건에 한국이 「과잉반응」,북.미간 제네바협정의 틀을 깨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경고라는 관측도 귀담을만 하다. 로버트 金씨 사건 수습방향은 결국 무장공비 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김성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