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아무나 하나 ~” 전문배우의 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둘은 처음 만난 사이지만 어느 새 형·동생 하며 살갑게 대했다. 사진을 찍자는 말에 한지상은 “작품처럼 누워 볼까요?”라며 포즈를 취했다. 앞쪽이 홍경수. [강정현 기자]


 신해철·강인·희철·김원준·대성…. 모두 최근 뮤지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가수들이다. 뮤지컬 흥행과 함께 연예인들의 뮤지컬 진출은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지나치게 미화할 것도, 괜히 선입견을 갖고 볼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은 든다. 노래 좀 하면, 연기 좀 하면 뮤지컬은 누구나 할 수 있나? 다음의 두 배우를 보면 뮤지컬 연기란게 녹록지만은 않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다. 

#가사전달-홍경수

한국어 공연인 ‘캣츠’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멍커스트랩. 이른바 리더 고양이다. 마치 사회자 같기도 하고, 분위기를 다 잡는 역할이다.

사실 ‘캣츠’의 대사는 어렵다. T.S. 엘리엇의 시가 원작이기에 함축과 은유가 많다. 그건 외국 배우들에 의한 영어 공연에서도, 현재 공연 중인 한국어 공연에서도 그렇다. 게다가 드라마도 약한 편. 배우들의 대사는 허공을 맴돌 때가 많다.

그러나 홍경수(34)의 말은 귀에 쏙쏙 박힌다. 식재료가 뭉쳐진 채 그대로 넘어와 목에 턱 걸리기보단, 정성스럽고 곱게 다져진 느낌이다. 그는 “대사를 씹어주고 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포인트를 꼭꼭 찍어주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평상시 말할때 흐리기 쉬운 조사와 어미에 강세를 주는 것도 뮤지컬 대사를 관객에게 잘 전달해주는 그만의 비법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의미의 정확한 이해다. “왜 작가가 이런 말은 했는지, 지금 이 대사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를 내가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그건 반복된 연습에서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그는 한양대 성악과를 나왔다. “가족이나 친척 중에 노래 잘하는 사람 있는지”라는 질문에 “아버지, 어머니가 지역 노래 자랑 대회에 출전하셨다 만나셨다”고 한다. 피는 속이기 힘든 법일까. 굵은 바리톤의 목소리는 안정감을 전해주곤 한다. 7년간 서울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최근 ‘홀로서기’에 나섰다. “서울예술단에서 한국 무용 등을 익히면서 배운 깊은 호흡이 가사 전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가창력-한지상

오는 12일까지 경희궁 야외 무대에 오르는 고궁뮤지컬 ‘대장금’엔 희한한 장면이 나온다. 거칠게 격구를 한 중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눕더니, 누운 상태에서 그대로 노래를 부른다. 하드 코어 밴드들이 누워서 기타를 치는 경우는 있어 왔지만, 누워서 노래 부르기라? 당사자인 한지상(26)은 “당연히 힘들다. 배에 있는 힘껏 힘을 주고 부른다. 앞으론 물구나무서기로 노래 부르는 경우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며 웃는다.

그 노래가 ‘뜻을 높이 세우소서’다. ‘대장금’의 메인 타이틀곡으로 그의 가창력은 관객을 전율케 하기에 충분하다. “자기 감정에 취하기보다, 의미를 꾹꾹 눌러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력은 흥미롭다. 일곱 살 때부터 9년간 피아노를 쳤지만 “자유로움이 구속되는 것 같아” 포기했다. 이후 범생이처럼 공부에만 전력했다. 그러나 대학에 떨어졌다. 재수 때는 빨강 트레이닝복으로 기억되는 스파르타 학원에서 생활했다. 또 떨어졌다. 삼수 때도 수능 점수가 잘 안 나왔다. 모든 게 절망처럼 다가올 때, 갑자기 ‘연기’에 대한 열망이 치밀어 올랐다. 연기 학원에서 한 달간 맹연습을 했고, 기적처럼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 합격했다.

노래는 삼수 때부터 했다. 외로움과 열등감을 덜어낼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넣으면 노래 한곡 나오는 이른바 ‘오락실 노래방’에서 스티비 원더·알 켈리·브라이언 맥나이트 등의 노래를 혼자 불렀다.

그런데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니었다. 꼭 녹음을 해서 집에 돌아가 반복해 듣곤 했다. “지금껏 따로 레슨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 녹음된 노래를 들으면 주제 파악이 된다. 노래방이 스승인 셈”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도 자기 돈을 털어 1년에 한번씩 연극을 올린다. “연기를 하고 싶다. 뮤지컬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다. 한지상을 버리고 또 다른 가면을 쓴 채 노래를 부를 줄 알아야 진정한 뮤지컬 배우”란다.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