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中年>14.원예.도예전문가 이혜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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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자기만의 세계」를 가졌으면 하는 것은 자식과 남편에게 휘둘려 살아야하는 많은 주부들의 공통된 바람일지 모른다.
엄마요 아내라는 본분에만 매달려 오랜 세월 살다 보면 어느날남는 것은 허망함이랬던가.하지만 어떻게? 주부 이혜숙(李惠淑.
48)씨는 이 점에서 「평온한 혁명」을 이뤄 온 신세대중년이다.직장으로 나가거나 나를 주장하는 목소리의 높임 없이 가정과 조화롭게 자기만의 세계를 가꿔 왔다.
서울 정릉 그의 집 3층 베란다를 가득 채운 4백여가지에 이르는 앙증스런 분과 화초들은 이씨의 그런 조용한 자기선언을 웅변해 준다.
『3년 터울로 딸 넷을 낳았으니 결혼해 12년을 애만 낳은 셈이지요.막내가 두 살 되던 해 문득 이게 바라던 삶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더군요.하지만 애들이 많아 다른 일은 할 수 없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궁리하다 취미 삼아 꽃기르기를 시작했지요.남편도 아이들도 좋아하고….』 그것이 86년 무렵.텃밭의 옥잠화.불로초등 우리 전래의 풀꽃에서 다육(多肉)식물.분재로 확대돼 온 그의 꽃가꾸기 취미는 『화초와 분이 조화돼야 자연의 미가 살아난다』는 생각에 덩달아 시작했던 그의 분빚기 도예와 함께 이제 사업으로 까지 발전했다.올봄 새로 지은서울 수유동 친정집 1층에 「그린도예」라는 간판을 내걸고 자신의 원예및 도예기법을 배우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강좌를 시작한 것.
『한가지 한가지 배워 갈수록 재미나고 신기해 푹 빠져 했을 뿐인데,그런 취미도 한 10년 되니 자연스레 한 영역이 되는군요.』 여기저기 원예나 도예를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씨처럼 원예와 분도예를 결합해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마사토로 빚은 작은 분과 땅속 깊은 곳의 처녀흙.액비료등을 써서 화초를 작게 다이어트 재배하는 것도 이씨의 독특한 기법으로 꼽힌다.이러한 자기만의 노하우를 터득하기까지 그가 쏟아 온노력 또한 남다르다.
맨처음 분재강좌 수강생으로 시작해 이런저런 동호모임.전시회등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고 92년에는 「아줌마로는 유일하게」 홍대미술.디자인교육원에 들어가 6개월 과정을 마쳤다.
화훼재배기능사 2급 국가기술자격을 갖고 있는 그는 분경가(盆景家) 곽진희선생의 8년 문하생이기도 하다.
『(현모양처로만 보이는)겉만 보고는 사람들이 제가 얼마나 억척스러운지 모르죠.』 뭐든지 하면 끝까지 해야 하는 자신의 성미는 이북출신인 부모님에게서 타고난 「또순이 기질」이라며 이씨는 웃는다.
수도여사대(현 세종대)가정과를 나와 29세 노처녀로 현재 모자동차회사 영업부장인 남편과 결혼하기까지 그는 미용강좌도 하며대학문구점에 납품도 하고 바쁘게 살았다.결혼하고도 애들이 어리던 몇 년간을 제하고는 집 두 번 짓고 신앙생활 하고 원예.도예하고….
이씨는 전업주부이면서도 직장여성 이상으로 쉬지 않고 살아 온그동안의 세월에 대해 「성취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10년간 가꿔 온 「나만의 세계」를 시장에 내놓은 셈인 「그린도예」에 대한 그의 기대와 의욕은 그래서 더 큰 것 같다.
『시장은 얼마든지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손바닥만한 정원이라도 자기가 직접 가꾸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커지고 있다는것을 주변에서 많이 느낍니다.인테리어에 대한 관심도 크고요.때를 봐서 미국 캘리포니아에도 이런 점포를 내볼까 해요.』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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