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동물행동학 서적 출간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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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국내 신간에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그것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화자찬해온 인간들에 반기를 들면서.우리에게 유아독존식의 자만심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이른바 동물행동학류들이다.말 그대로 동물의 행동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다소 낯선 분야로 아직 국내학계의 연구는 미흡한 상태.이를 전문으로 다루는 대학강좌도 개설되지 않았을 정도다.하지만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이 최 근들어 줄을잇고 있다.번역서들이 주류다.대부분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들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린다.파브르의 『곤충기』,시턴의 『동물기』등 종전의 책들이 동물행동을 그 자체로 분석하고 나섰다면최근에는 자연계의 진화과정을 더듬으 며 인간과 동물의 유사성 혹은 상호의존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
우선 독일 뮌헨대 이레노이스 아이베스펠트교수의 『사랑과 미움』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을 객관적으로해부한다.원래 의도는 인간의 행동분석을 통해 인간이 과연 「사랑」의 동물인가,아니면 「미움」의 동물인가를 해 명하는 것.이를 위해 인간과 가까운 침팬지나 오랑우탄에서부터 갈라파고스 제도(諸島)의 새들,심지어 파충류까지 갖은 동물을 탐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의 감정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결정됐다.미움.증오.공격성은 물론 이타심.신뢰감.사랑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시각.예컨대 혼자 떨어진 유아가 배부른데도 울고 소리치는 것은 신체접촉을 희구하는 본능 때문이다.갓태어난 히말라야 원숭이 실험에서도 원숭이는 젖병을 매단 철사모형보다 접촉이 잦았던 헝겊인형에 더 친밀감을 보였다.더욱이 인간의 성장마저 수천년간 축적된 유전자정보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꿈꾸는 달팽이』『생물의 죽살이』등 저서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선 권오길(강원대.생물학)교수가 펴낸 『생물의 다살이』는 공생(共生)의 지혜를 체득한 생물들의 모습을 추적한다.「다살이」는 「다함께 어울려 산다」는 뜻의 조어.
유충을 해치려는 말벌을 쫓아주며 유충의 똥구멍에서 꿀을 빨아먹는 개미,유충과 성충 사이에는 먹이경쟁을 피하는 배추흰나비등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동물세계의 다양성이 풍부하게 소개된다.이와 반대로 말벌이 잡은 배추벌레를 도둑질하는 기 생벌,알만 낳아놓고 바다로 떠나는 무심한 거북도 등장한다.저자는 『지구는 오만방자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며 『생물은 우리의 거울이고 스승』이라고 말한다.
『솔로몬 왕의 반지』는 동물행동학의 선구자 콘라트 로렌츠가 인간의 파괴본능과 공격성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격조높은 에세이.짐승.새.물고기와 대화한 솔로몬처럼 그도 동물을 면밀히관찰한 결과 인간의 행동 또한 동물과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담고 있다.그의 또다른 저서 『동물이 인간으로 보인다』도 동물의 실수,사랑과 분노,충성심을 인간사에 빗대가며 설명한다.
이밖에 동물의 공포.분노를 생생하게 옮긴 『코끼리가 울고 있을 때』,침팬지들의 집단생활에서 권력의 속성을 읽어낸 『정치하는 원숭이』등 10여종이 넘는 관련서(표참조)가 서점의 점두를장식하고 있다.
이들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사실.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듯 자연계의 별난 일화와 감동거리가 가득하다.반면 초점은 역시 인간.현대인의 감정.인식,심지어 관습조차 자연의 진화과정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박시룡( 교원대.생물교육학)교수는 『동물행동학은 인간과 동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고정관념에 도전한다』며 『어떤 생물학 영역보다 이 분야의 책이외국에서도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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