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음악가와 후원자를 1:1 연결 ‘키다리 아저씨 음악상’첫 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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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미국에서 열리는 음악 콩쿠르에는 심사위원만큼이나 중요한 청중이 있다. 숨은 후원자들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애호가들이 성장 가능성 있는 음악가를 골라낸다. 이 후원자들은 재능있는 음악가들을 물심 양면으로 돕는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연주자들은 입상에 실패해도 이들과 후원의 연을 맺고 재능을 꽃피우는 경우가 꽤 있다.

국내에도 이런 시도가 첫 선을 보인다. 신한은행과 대원문화재단의 아이디어다. 내년 1월 첫 결과를 발표하는 ‘신한음악상’은 차세대 연주자에게 ‘키다리 아저씨’를 연결해주는 제도다.

음악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피아노·관현악·성악 연주자가 음악회를 여는 것이 첫 단계다. 여기에 초대되는 청중은 신한은행의 PB(Private Banking) 고객 (금융자산 10억원 이상)들이다. 이들은 연주를 듣고 후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PB 고객 한 명에 연주자 한 명이 연결된다. 음악상 운영진은 이미 심사위원단을 꾸렸고 이달 중 공고 및 접수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후원 방식이다. 기존의 음악상은 음악 재단이나 기업·단체가 음악가를 선정하고 상금을 주는 식으로 운영됐다. 여기에 지속적인 연주 기회를 추가로 지원하는 정도였다.

‘신한음악상’은 개인 차원의 1:1 후원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보다 지속적이고 친밀한 메세나를 꿈꾼다. 하이든과 에스테르하지 후작, 베토벤과 루돌프 대공 등 수세기 전 서양의 후원 장면을 재연하고자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1:1 메세나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잡음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일단 자발적으로 콩쿠르 무대나 연주회장을 찾아다니는 후원자와는 출발이 다르다. 특히 조용한 도움과 공개적 후원에 대한 의견 충돌도 생길 수 있다.

음악 애호가들이 연주자를 조용히 돕던 것을 공개적인 음악상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한음악상’은 국내에서 생소했던 ‘독지가 문화’의 음악계 정착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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