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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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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수직 방향으로 대기가 이동하는 대류(對流) 현상이 줄어들면 하늘로 말려 올라가는 먼지의 양이 줄어든다. 게다가 비나 습기에 의해 먼지가 땅으로 씻겨져 내려가 하늘이 맑아진다. 대류가 줄어드는 대신 대기는 수평으로 흘러 두께가 큰 적운(積雲) 등이 적어지면서 새털구름 등이 발달해 하늘이 높아 보인다. 자연과학적으로 풀어본 지구 북반구 가을의 풍경이다.

이즈음이 되면 들판 대부분의 식생(植生)은 옷을 갈아입는다. 황금빛이 주조가 돼 금추(金秋)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다는 일엽지추(一葉知秋) 식의 자연과 인생에 대한 성찰의 자세도 두드러진다.

가을은 속성으로 따져보면 쇠(金)의 계절이다. 나무와 불, 흙과 쇠·물 기운의 오행(五行)으로 따져보면 그렇다. 쇠는 차가운 성질을 띤다. 과거의 동양 사회에서 미뤘던 형(刑)을 집행하는 계절이 가을이다. 뭐든지 맺고 끊는다는 의미에서 동양의 덕목으로 치자면 의(義)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또 찬바람이 불고 땅에서 자랐던 모든 식생이 열매를 맺는 때다. 그래서 밖으로 벌이기보다는 안으로 거둬들이는 행위가 더 적합하다. 일을 끝맺음하고 안으로의 수렴을 재촉하는 가을은 따라서 내면적으로 성숙을 꾀할 수 있는 성찰과 사색의 계절이다.

그런 정서는 유명 시인들의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을의 기도’를 쓴 김현승 시인은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라고 가을의 정서를 읊었다. 유럽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가을날’이란 시에서 “마지막 열매들이 완전히 영글도록 명해 주소서… 묵직한 포도송이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라고 해 가을이 지니는 완숙성의 이미지를 집어냈다.

2008년 한국의 가을은 가을 같지 않아 걱정이다. 9월 중순을 넘어 이어지는 무더위의 날씨가 일단 그렇다. 추석을 넘겼는데도 불볕더위가 낮 동안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가을이라기보다는 여름에 가깝다.

봄과 여름을 장식했던 촛불의 열기가 한반도의 대기를 덥힌 것인가. 날씨는 그렇다 치고, 그 계절이 주는 사색과 성찰·숙성의 의미까지 우리 사회에서 차츰 잊혀지는 것 아닌지, 괜히 걱정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