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신자유주의'여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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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자연계의 동식물은 신(神)이나 인간의 간섭이 없어도 약한 놈은 멸종되고 강한 놈은 살아 남는다는 찰스 다윈의 이론이 자연도태설이다. 뒤집으면 자연선택설이다. 다윈의 이론에서 힌트를 얻은 영국의 철학자.과학자 허버트 스펜서는 인간 생활을 생존을 위한 무한투쟁으로 보고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주장했다. 이것이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다.

사회다윈주의는 제국주의.식민지주의. 앵글로색슨족의 문화적.생물학적 우월론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용됐다. 사회다윈주의는 경제에서는 자유방임(自由放任)의 자본주의, 정치에서는 보수주의 이론을 떠받쳤다. 그리고 20세기 후반,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조지 부시들의 신자유주의가 사회다윈주의의 정신적 맥을 이었다.

*** 경쟁지상주의에 반기 들어

신자유주의는 경쟁지상주의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부(富)와 권력을 차지한다. 가난과 실패는 본인 책임이다. 정부와 사회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정부는 가급적 작은 것이 좋다. 레이건 8년에서 아버지 부시와 클린턴 12년을 건너 뛰어 아들 부시에 이르는 미국 공화당 정부의 사회.경제정책이 부자들을 위한 쪽으로 치우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국제관계에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정치적 상호의존을 강조하여 세계무역기구.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한 민노당이 신자유주의 타파를 선언한 것은 논리적이다. 2000년에 발표된 민노당 강령에는 신자유주의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대목이 열일곱군데나 된다. 민노당의 인식으로는 자본가와 정치권력은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민중을 착취'한다. 민노당은 노동해방.인간해방의 사회주의적 가치를 계승하여 새로운 해방공동체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한다. 민노당은 사적 소유권의 제한과 생산수단의 사회화(국유화), 노동자들에 의한 생산수단의 민주적 소유를 실현하겠다고 밝힌다.

민노당은 '민주적' 경제체제의 실현을 위해 재벌을 해체하고 통신.운수.병원.학교를 공기업으로 전환하며,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는 국.공유로 하겠다고 밝힌다. 민노당 강령은 97년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대량실업과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과도하게 노출된 한국경제의 대외종속적인 재생산 구조를 자립적인 구조로 바꿔 신자유주의적 국제 경제관계의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한다.

19세기 자유방임주의를 닮은 신자유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사회가 약자와 패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결국 사회복지 비용의 몇배가 되는 사회비용을 물게 된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도 아니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도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동구권서 실패한 정책도 담겨

그러나 민노당의 강령은 89년 이후 소련.동유럽권이 반세기 이상의 실험 끝에 실패를 인정하고 폐기한 정책들을 많이 담고 있다. 민노당이 강령에서 밝힌 반(反) 신자유주의 정책을 어느 정도 실현시킬 수 있는가가 문제다. 경제의 바탕, 사회의 바탕을 흔들지 않고 재벌을 해체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 또는 공영화할 수 있는가. 가진 자들에게 부유세를 매기고도 열심히 일할 의욕을 살릴 수 있을까. 병원을 국가나 공공기관의 소유로 바꾸고도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할까. 글로벌시대에 고립을 자초하지 않고 한국경제를 자립적인 구조로 유지할 수 있는가.

민노당이 모델로 삼는 브라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 룰라를 보자. 그가 네번째 출마에서 당선된 것은 중도의 자유당과 정책협정을 맺고, 재계 출신을 러닝메이트로 하고, 노조가 반대하는 인플레 대책과 균형예산을 공약하고, 대외채무의 상환을 약속한 결과다. 민노당은 제도권에 들어온 정당에 어울리도록 강령을 손질하여 국내 여론과 국제사회의 반응을 물어야 한다. 비전과 현실정책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