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韓.日 새관계 끌어낼 미래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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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날 국제관계의 특징으로 저위정치 현안의 부상을 꼽는다.군사안보적 현안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냉전시대와 비교할 때 국제관계의 변화한 시대상은 현실감있게 부각된다.최근 한.일관계의 변화에는 이러한 시대적 특징이 가감없이 반영되고 있 다.독도 영유권 공방과 과거사 관련 망언을 둘러싸고 냉기류가 흘렀던 한.
일관계는 비정치적 현안인 스포츠 부문에서 미래지향적 관계구축이라는 본궤도 재진입의 가닥을 잡았다.
국제관계의 또다른 시대적 특징은 국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과정적 방안들이 다양하게 강구되고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패권쇠퇴 이후 세계정치구조가 또다시 경쟁과 긴장 상승의 역사구조적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현실적 우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월드컵 공동개최 결정이 정치적 화해점을 제공하는 것도,공동개최 준비과정과 행사를 통해 양국간 협력 확대를기대하는 것도 이같은 시대상의 반영인 셈이다 한.일관계를 협력과 긴장으로 매개해주는 고리는 다양하다.지역국제정치의 구도상 양국간 안보영역의 이해관계는 탈냉전기에도 여전히 많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북한개방 및 연착륙에 관한 외교적 절충도 현재로선 크게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경제적 관계는 양국의 경제구조를 고려할 때 서로를 필요로 하는 복합적 상호의존 관계다.이러한 부문은 양국관계의 협력구도 확대를 절실히 요구하며,그것은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21세기 협력지향 구도를 멈칫거리게 할 수 있는 요인은 두가지 점에서다.하나는 일본 군사강국 경계론이며 다른 하나는 과거사 관련 문제다.이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상반된 정향이 혼재돼 있다.
전자에 대해서는 우려반 두려움반이며 후자에 대해서는 늘 심정적 우위를 가진다.문제는 이 두 현안이 다른 협력지향적 현안들과 복잡하게 연계되면서 하시라도 양국관계를 후퇴시킬 요인으로 잠복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월드컵 공동개최로 겨우 봉합된 화해국면의 전개를 지켜보는 이들은 조마조마한 기분이다.
협력관계 구축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고 지정학적으로 숙명지워진 것이라면 해법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역시 교류영역의 확대라는 국제관계의 시대상에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현시대 복합적인 국제관계에 있어 정부간 관계 가 모든 해결책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민간부문의 교류확대를 통해 진정한 협력관계를 지탱하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월드컵 공동개최는 이러한 가능성을 확대시켰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일본은 다원주의 사회다.일본을 하나의 목소리만 내는 일원적 행위자로 간주하는 우리의 인식을 먼저 교정할 필요가 있다.일본사회내에도 군사강국에 대한 비판론이 존재한다.일본 정부의 무모한 행보를 견제할 수 있는 사회단체들과 교류를 확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과거사 문제도 유사한 해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우리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고 딱해 보이기까지 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사태는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에서 연유한다.인식적 차이는 한편이 강요한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월드컵이 과거 사를 단숨에해결해 주지도 않으며,그렇다고 마냥 영구 미제 현안으로 미뤄놓을 수도 없다.그러므로 법적.외교적.민간부문의 해결책을 전략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장기적 관점에서 오히려 효과적인 해결책은 민간부문의 교류를 통해 나타날 수 있다.
양국간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민간부문의 교류와 제도적 장치들을 하나씩 강구해 나갈때 궁극적으로 인식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불신과 소모적 대립의 벽을 넘어설 수 있다.
김기정 교수 연세대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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