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상 배달이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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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 음식 장만을 슬슬 걱정할 때다. 식구들이 모여 오순도순 준비하면 좋겠지만 바쁜 생활 때문에 쉽지 않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엔 더 그렇다. 직장 일을 끝내고 장을 봐서 시댁으로 달려가는 것도 버겁다. 전업주부인 동서가 장을 봐 놨다 해도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를 둘러야 한다. 수퍼우먼도 힘들어할 명절 과제다. 돈은 돈대로 들고 몸은 몸대로 피곤한 차례 음식 준비. 이 과제를 소리 없이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주문 음식으로 상을 차리는 것. ‘정성 부족’이란 눈총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주부가 많지만, 차례 음식 배달업체는 꾸준히 늘어 이제 이 시대 풍속의 하나가 됐다.

집에선 한두 가지만 준비 목동에 사는 김씨네 종부 며느리 이소연(34)씨. 3년 전 추석 때부터 음식을 한두 가지만 준비한다. 지난 설에는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떡갈비를 했고, 돌아올 추석엔 조카들이 즐겨 먹는 꽃게 무침을 준비할 거란다. 다 시어머니 덕이다. 3년 전 임신으로 몸이 붓고 심한 입덧을 하는 외며느리가 안쓰러웠는지 시어머니가 총대를 멨다. 차례 음식을 손수 만들지 않고 남이 만든 주문 차례 음식을 사다 쓰기로 한 것. 시어머니 역시 오랜 관절염으로 차례상 차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첫 주문 차례상은 집안 어른들의 눈총 속에서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이후 주문 음식으로 제사와 명절을 지내며 차츰 ‘주문 음식=몰정성’이란 생각이 바뀌고 있다. 요즘은 집안마다 돌아가며 주문 음식 값을 계산하고, 돈을 내지 않는 집에서는 함께 먹을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 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명절은 물론 제삿날도 더 이상 며느리의 ‘노동의 날’이 아닌 ‘가족 파티 날’이 됐단다.

벌써 70여 개 업체 알게 모르게 주문 음식으로 차례를 올리는 집안이 쑥쑥 느는 모양이다. 전국적으로 70여 개의 주문 차례 음식 업체가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다. G마켓 식품운영팀 이진영 팀장은 “차례 음식 주문자 수가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옥션 식품부 박지영 대리 역시 “차례 음식 판매량이 매년 20%이상 늘고 있는데 올해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서인지 대형 포장보단 소형 주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경기 지역 업체들이 내놓은 올 추석 차례상은 보통 열 명이 먹을 수 있는 상차림이 22만원 안팎이다. 예년보다 2만원가량 올랐지만 개별 제수용품의 가격 상승을 따져봤을 땐 오히려 경제적인 편이다.

[사진=조용철 기자]

배달 박스엔 초와 향까지 차례용으로 배달되는 음식은 박스 두 개 분량이다. 밥만 빼고 과일이나 술에서 초·향·지방까지 차례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품이 들어 있다. 전과 나물·탕 등 30여 가지 음식은 각각의 용기에 담겨 있어 포장만 뜯어 제기에 올리면 된다. 전이나 탕은 한 번 더 데워 올리는 정도의 수고가 전부다. 추석 차례상에는 송편이, 설 차례상에는 떡국이 따라온다. 전체적으로 상에 한 번만 올릴 정도로 양이 적어 음식 쓰레기 걱정도 없다. 이씨는 “냉동실에 얼려 놓고 질리도록 먹던 차례·제사 음식의 기억이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주문자는 시어머니가 대부분 편리함을 좇는 젊은 층이 차례 음식을 주로 주문할 거란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다례원 이성수 이사는 “주문자의 40% 이상이 시어머니”라고 말한다. 본인이 차리려면 몸도 고달픈 데다 맞벌이 며느리의 부담도 덜어주려는 ‘센스 있는 시어머니’들이다. 이 이사는 “한 번 차례 음식을 주문한 사람이 다시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바쁜 현대사회에서 외식이 일상인 것처럼 제사나 차례 음식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례상 첫 주문 이렇게

궁금한 점은 확인 또 확인 음식 재료의 원산지는 어딘지, 음식을 직접 만드는지 등을 반드시 확인한다. 포장 상태나 운반 방법도 체크 대상이다. 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엔 음식이 상할 수 있다. 아이스박스로 포장하는지, 냉장차로 운반하는지, 업체가 직접 배달하는지, 택배나 퀵서비스를 이용하는지 등을 꼼꼼히 알아본다.

늦어도 5일 전엔 예약 소규모 업체가 많아 주문이 한꺼번에 몰리는 명절엔 예약하기가 쉽지 않다. 제례 문화권이 같은 지역인 곳을 고르면 피문어나 가오리적 같은 향토색 짙은 음식도 주문할 수 있다.

조리 현장을 보여주는 곳이면 안심 음식을 만드는 데 위생은 최우선이다. 음식 만드는 곳을 보고 싶다고 할 때 흔쾌히 응하는 곳은 위생에 자신 있다는 의미다. 경험이 있는 주변인의 추천을 받거나 개인 블로그·카페 등 인터넷에 올라온 주문 후기를 참조하는 것도 방법이다.

너무 싼 곳은 피한다 시중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싸구려 수입 식재료가 많다. 지난해 추석에 비해 음식 재료비가 20%가량 올랐다. 기름 값도 뛰어 유통비도 만만치 않다. 상식선을 넘어선 가격엔 한번쯤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글=백혜선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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