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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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일본에 계시다는 그 어머님댁 전화번호는 알아요?』 『모릅니다.』 『스티븐슨교수는 아시겠군요.』 『글쎄요.』 『방으로 가서 물어봅시다.』 그릇 깨지는 소리에 섬뜩한 표정을 짓고나서도서여사는 조용히 몇마디 계속하다가 일어섰다.
우물쪽에서 실성한 듯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일었다.우변호사 아내가 우는 것인가.
서여사는 대청마루쪽으로 가다가 뒤꼍 우물가로 발길을 돌렸다.
우물가는 처참했다.
십장생(十長生) 항아리가 산산조각이 나 흩어져 있고,하얀 철쭉꽃가지들이 더불어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서여사를 따라가던 아리영은 소스라쳐 걸음을 멈췄다.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의 무병 장수와 복록을 축수(祝壽)하기 위해 우변호사가선사했다는 값진 항아리다.불길한 예감으로 가슴이 그늘졌다.
우변호사 아내는 땅바닥에 주저앉은채 통곡을 하고 있었다.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통탄하는 것이라기보다 아우성치고 싶은 참에 마침 울 일이 생겼다는 듯한 그 울음새에 신경이 곤두섰다.아리영은 허리를 구부려 흩어져 있는 항아리 조각을 꼼 꼼히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해.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십장생 그림 토막을 비롯하여 아주 작은 새끼손톱만한 조각까지 차근차근 한데 모았다.낱낱이 모아 붙여 원형대로 복원해 볼 작정이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던 서여사는 훌쩍 대청마루쪽으로 뒤돌아섰다.서여사가 자리를 뜨자 우변호사의 아내는 더욱 극성스럽게 울어대며 아리영이 모아 놓은 항아리 조각 무더기를 발로 차무너뜨렸다.그중 한조각이 아리영의 손등을 비수처 럼 그어 날았다. 『앗!』 아리영의 비명을 듣고 되돌아온 서여사는 노기 가득한 얼굴로 사무실쪽을 향해 직원을 불렀다.
『빨리 약상자 가져와요!』 아리영의 손등은 치솟은 피로 금세흥건했다.
『몰상식한 짓같으니라고….』 서여사는 노하며 어이없어 했다.
여자 직원과 남자 직원 둘이 약상자를 들고 쫓아왔다.약상자 안엔 소독용 알콜로 적신 솜을 담은 그릇이며 핀셋이며 반창고며갖은 약들이 가지런했다.
여직원이 아리영 손을 치료해 주는 것을 내려다보며 서여사는 남자 직원에게 일러 깨끗한 보루 박스와 솜뭉치를 가져오게 했다.서여사도 아리영처럼 항아리 조각을 모아 붙여볼 생각인것같았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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