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북한 변화와 新동북아 질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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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반도 4자회담을 둘러싸고 관련국들이 각자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일 서울 타워호텔에서 동국대 안보연구소 주최로 「북한의 변화와 신동북아 질서」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주제발표에서 오코노기 마사오(小此 木政夫) 일본 게이오(慶應)대 교수는 『중국은 북.미간 관계개선에 내심 불쾌감을 가지고 있으며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판단되면 북.미간개선움직임에 제동을 걸 것』이라고 전망했다.다음은 세미나후 동국대 안보연구소장 강성윤(姜聲允)교수 의 사회로 진행된 장바오런(張寶仁) 중국 지린(吉林)대 교수 등의 좌담내용.
[편집자註] ▶강성윤〓4자회담 제의가 나온지 한달이 가까워지고 있으나 아직 북한이 명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 북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오코노기〓북한은 「4자회담을 받으면 결국 남한이 당사자로 편입되는 것 아니냐」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그러나 4자회담을 명백하게 거부하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된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형식에는 융통성을 보이면서도 북.미 양자관계의 틀은 깨지 않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봅니다.그러나 그런 방안이 간단치 않기 때문에 「검토중」이라는 얘기만 하고 있는 것이죠.
예상되는 북한의 대응책중 하나는 북.미가 평화협정이 아닌 잠정협정을 논의하고 여기에 옵서버 자격으로 한국.중국이 참여하는방식이고,또하나는 『4자회담 좋다.그러기 위해선 분위기 조성이필요하다』면서 남한정부가 받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장바오런〓4개국이 동등하게 참여한다는 이번 4자회담 제의를 북한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북한이그동안 애써 구축해놓은 「조.미관계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 리는 없기 때문이죠.
조.미관계가 더 진전된 후 북한은 4자회담을 고려할 것입니다.중국은 북한에 「4자회담을 받아라,받지 말라」할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중국은 북한이 어떤 결정을 내린 후에나 좀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할 것입니다.
▶오코노기〓일본은 현실적 당사자인 남북한,한국전에 참가한 미국.중국등 4국간 회담을 지켜본 후 한반도문제에 관여할 것으로보입니다.
▶강성윤〓한.미 공동발표문에 나와있는 「새로운 항구적 평화체제를 추구하는 것은 남북한이 주도한다」는 표현이 모호합니다.평화체제의 범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오코노기〓미국의 입장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사안에 국한돼 있습니다.때문에 미사일 협상등 나머지 사안들에 대해선 북한과 미국이 논의하자는 것입니다.
▶강성윤〓대(對)북한 정책을 놓고 미국.중국이 주도권 다툼을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미국이 북한을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논리에는 북한을 영향권안에 두겠다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보입니다. ▶오코노기〓북한의 핵(核)동결등 위험성을 제거하면서 북한을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편입시키겠다는게 미국의 전략입니다.
▶장바오런〓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생각입니다.북한이 미국쪽으로 경사되는 것은 중국으로선 바람직하지않습니다.그러나 북한이 점점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중국이 곤혹스러워하고 있죠.
다시 말하면 북한이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것입니다.중국이 지난해 북한에 식량원조를 해준 것도 북한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인데,오히려 북한은 「그 정도로는 안되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외교적으로 지원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오코노기〓중국은 북.미 관계개선에 내심 불쾌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표현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그러나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판단되면 북.미 관계개선 움직임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입니다.
즉 경제난 해결을 위해서는 파트너를 미국.일본으로 바꿔야 하는데 그렇다고 「옛날 파트너」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강성윤〓4자회담에서 빠진 일본은 앞으로 아무 제한없이 북한과 관계개선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까.
▶오코노기〓그렇지 않습니다.4자회담 진전 없이는 대북 관계개선이 곤란합니다.그런데 4자회담 보다 북.미 관계만 진전이 있을 경우 일본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지가 고민거리입니다.
이런 점에서 한.미.일 3국간 치밀한 전술이 요구되는데 아직까지는 갭이 있는 것같습니다.물론 북.일간에는 현재 사전조율작업이 진행중입니다.예컨대 배상금 문제에 대해 북한은 「받는 측이 만족하고 주는 측이 부담이 안가는 선」이라는 절묘한 표현을쓰고 있습니다.
▶강성윤〓김정일(金正日)의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언제로 보십니까. ▶장바오런〓金이 취임을 미루는 것은 건강이나 3년상이 아닌 경제난 때문입니다.현상황에서 취임하면 그 책임이 다 김정일에게 가는데 이를 어떻게 부담하겠습니까.미.일과의 관계개선으로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면 내년에는 경제상황이 좀 나아 질 겁니다.게다가 남한의 새 대통령이 98년에 취임하므로 그 전해인 97년에 취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오코노기〓제가 지난 3월말 방북(訪北)했을 때는 「3년상과노동당 창건일(10월10일)이전 설(說)」이 있었습니다.당시엔「만3년」이라는 말이 전혀 없다가 최근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내년으로 미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그 러나 두가지 가능성은 다 있다고 봅니다.
▶강성윤〓김정일체제의 붕괴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코노기〓김일성(金日成)사후 권력투쟁.건강.경제난등을 이유로 조기 붕괴론이 제기돼 왔었지만 현시점에서 볼 때 권력투쟁이나 건강은 논의에서 일단 제외된 것 아닙니까.문제는 경제난입니다.동유럽 국가는 경제난이 정치파탄으로 간 예입니 다.그러나북한은 유일사상체제.수령론등 독특한 정치체제로 이 부분을 상당히 커버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경제개방과정치간의 갈등이 극대화돼 체제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겠지만 말이죠.
▶장바오런〓남북교류가 결과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유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남한에 많이 있는데,거꾸로 북한의 개방이 성공하면 체제가 더욱 탄탄해질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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