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총선이라는 홍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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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벌건 열꽃을 전신에 달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던 아이는
문을 향해 자꾸만
머리를 박았다.

"안돼, 지금 밖에 나가면
열 귀신한테 잡혀간다.
사나흘만 참자꾸나."

30여년 전의 방 안,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지금 이겨내면 평생 안 아파.
그러니 아가, 조금만 참자."

그렇지만 아이는
밖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온몸 가득히 찬바람을 받고
풍선처럼 떠오르고 싶었다.

보름쯤 아팠던가,
살아 겪지 않으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는 홍역.

이 한번으로 다시는
아플 일이 없으리라.
외할머니 말씀을
아이는 믿었을 터이다.

삶의 고비마다
홍역이 포진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으므로.
홍역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하고
혹독한지를 몰랐으므로.

온 나라 사람이 함께
열꽃 없는 홍역을
앓기도 한다는 걸
그때 어찌 알았으랴.

총선이라는 홍역이
또 한 차례 지나간 즈음.
그 열병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채워질까.

다시, 국회 안에서
서로 멱살을 잡고 흔드는 모습?
또 촛불 들고 밤거리에 나선
사람들 행렬?

*우리나라도 내년 말께엔 '홍역 퇴치 국가' 선언을 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2002년 이후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덕분이다.

송은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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