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축법은 국회 공전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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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회가 80일째 공전하는 가운데 국회의장이 개원을 호소하는 최후통첩 같은 성명을 내놓았다. 의장은 오늘 오후 2시 본회의를 소집해 놓았다. 여야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본회의를 강행해 직권으로 국회의 문을 열겠다는 의지다.

의장이 비장한 성명을 내놓은 것은 11일 자신이 직접 원내교섭단체 대표들과 함께 만든 합의안이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합의안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가축전염병예방법(가축법) 개정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합의 다음날 ‘가축법 개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회에 못 들어간다’고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에 국회 정상화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합의하고 서명까지 한 합의안을 깬 책임을 져야 한다. 국회의장도 “합의가 무시되고 서명이 무효화된다면 누가 정치를 신뢰하고 국회를 존중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민주당은 당초 합의한 대로 일단 국회 원 구성을 마쳐야 한다. 오늘 등원해 국회법을 고치고, 약속대로 내일까지 상임위원장을 뽑아 국회 운영을 정상화해야 한다. 가축법은 그 다음에 국회 안에서 계속 논의할 수 있다. 국회 안에서 논의해야 할 법 개정을 국회 문을 여는 전제조건으로 삼는 것은 전후가 바뀐 무리수다.

둘째, 민주당이 주장하는 가축법 개정안 자체도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당이 요구하는 대로 가축법을 고칠 경우 한·미 쇠고기 협상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가축법을 개정해 결과적으로 협상을 지키지 않게 될 경우 미국은 당연히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다. 제소당할 경우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가신용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무역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지만 강대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경우 국익을 위해 WTO 체제에 따른 무역질서와 교역관행을 더 강조하고 준수해야 할 입장이다.

민주당의 원내전략은 대화와 타협을 무시하는 정치 행태며, 가축법 개정안은 국익을 해치는 정치 공세다. “국민을 무시하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라는 국회의장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