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천년의 강을 건널 국회' 선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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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투표에서 가장 신비한 것은 장삼이사(張三李四)가 한장 한장 찍은 표가 모여 투표함을 거치면서 대수(大數)의 법칙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 거기로 태어난다는 점이다.민주주의의 근엄성은 이 대수의 법칙이 마련한다.국민에 의한 통 치라는 것도이렇게 해서 만드는 근엄성의 가호를 받아 비로소 가능하다.
오늘 투표로 이번에 새로 태어나는 국회는 이상이나 대책보다 지방색과 상대방 폭로를 에너지로 삼아 수태.출산된다.3金을 중심축으로 하여 때로는 삼각형으로 맞물린,작동할 수 없는 치차(齒車)가 될 수도 있다.하지만 이런 국회도 엄연히 대수 법칙의산물임에는 틀림없다.운명이라고 할 것인가,변덕스러운 자연의 선택이라고 할 것인가.지금 시간은 한 백년이 바뀌는데 겹쳐,한 천년이 바뀌는 여울목이다.이번 국회는 천년의 강을 건너는 다리역할을 감당하지 않을 수 없다.당 장 두 가지 사안에서 그러하다.경제문제와 북한문제가 그것이다.
경제는 지금 실은 인류 경제사 1만년만의 대홍수를 건너고 있다.1만년 동안의 농업시대와 2백년 동안의 산업시대가 이 홍수에 큰 소리를 내며 함께 떠내려가고 있다.「정보시대」는 종전과는 전혀 다른 경제적 토대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행 복과 위협을동시에 느끼며 깨달아 가고 있다.이 홍수를 내린 조화옹(造化翁)은 기술이다.
소비와 생산 가운데 기술이 더 세게 강타하고 있는 부문은 생산이다.종전에는 기계산업이 자동차를 생산했다.자동차를 생산하는공작 기계도 역시 기계산업이 만들었다.지금은 자동차를 생산하는설비는 압도적으로 전자적이다.자동차도 기계제품 이라기보다 가전제품의 하나로 돼 가고 있다.자동차만이 아니다.제조업.서비스업할 것 없이 모든 산업은 기술이 주도하는 「통합된 분업」시스템으로 변화하고 있다.그 가운데서는 물론 정보산업 자체가 가장 전형적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정보산업 이외의 비즈니스도 모두 정보산업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 바람에 생산자 사이의 자본재.원자재.부품 시장은 가격과 품질을 두고 경쟁하는 시장을 넘어 기술이 통제하는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여기에 경■ 의 글로벌화가 가세하고 있다.
마땅히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농업시대는 말할 것 없고 후발 산업화 시기의 그것과 전적으로 달라져야 할 것이다.첫째,정부가제공하는 규칙과 사업은 철저히 소비자 주권의 확립과 보호 쪽으로 치중해야 할 것이다.소비자에게 좋은 것은 경 제정의며 소비자에게 좋은 것만이 경제정의다.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업종전문화 등의 현안 논쟁도 소비자에게 어떤 쪽이 이로운가를 생각하면 결론이 쉽게 나온다.둘째,산업독점은 진입자유와 수입자유만보장하면 글로벌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다.업자 사이의 담합만은 철저하게 규제해야 할 것이다.셋째,정부는 거대한 학교-연구소 운영기관이 되어 기술이라는 무형 인프라스트럭처를 기업,특히 중소기업에 공급하는 원천이 돼야 한다.유형 인프라 스트럭처,즉 항만.도로.통신선로. 쓰레기처리장 등의 건설은 정부가 맡아야 할 사업이다.
북한 문제는 대남 전쟁 도발과 북한정권 자멸,이 두 가지 가능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도발도 하지 않고 멸망도 하지 않는다면 같은 민족 사이의 각별한 친선을 촉진하는 것 말고는 북한과는 아무 특별한 일이 없다.우리는 대체로 북한이 도발하면 그것은 북한의 멸망으로 곧장 연결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북한이 도발한다면 그것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그런데 내막적으로는 주로 남쪽한테서 양식을 위시한 경제원조를 받아내려는 위협일 것이다. 북한의 결과적 실패는 백성이 기근에 놓여 있음과 이렇게만든 것이 북한정치체제라는 점이다.북한의 기근은 작년에 내린 큰비 하나만이 원인이 아니었다.옌볜(延邊)교포들은 식량을 구하러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으로 넘어오는 북한 사람 들의 이야기를 92년에도 하고 있었다.백성이 정부 때문에 굶는데도 넘어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정권은 없다.
멀쩡해 보이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무너지는 것의싱거움과 잔인성도 보았지만 그 비참함은 더욱 가슴 아프게 보았다.도발에도 대비해야 하지만 자멸에는 더욱 대비해야 한다.북한인민 전부를 귀순동포 아닌 이재민 내지 피난민 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구호.재활시킬 구체적 계획을 법으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남쪽 경제에 경쟁력이 충분하지 않고서는 이 일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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