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씨 "총선은 대선의 보완적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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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았던 소설가 이문열씨가 4.15 총선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17일 인터넷신문 데일리안(www.dailian.co.kr)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은 지난 대통령 선거의 보완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를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 것이다.

이씨는 이번 17대 총선 결과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면서 "헌재의 판단은 별개 문제지만, 기각된다면 대통령 자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열린우리당의 승리는 나머지 정당들의 지나친 위축 내지는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이라며 "문제는 이번 총선이 앞으로 4년간 입법 활동을 해야 할 입법 전문가들을 뽑아야 하는데, 대통령 선거인단을 몽땅 뽑아 놨다"고 비꼬았다.

그는 또 이번 선거에 대해 "예전의 지역감정은 완화됐지만 대신 지역이기주의가 새로 나타났다"면서 충청권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약진한 것과 호남권에서 동교동계 의원들이 몰락한 것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특히 "민주당과 자민련이 대패한 데 대해서는 참담함과 무상함을 느꼈다"며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금까지 가져왔던 세상과 민심을 읽는 안목과 이해력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민주노동당의 약진에 대해 "제도정치권 속으로 들어오면서 더 순화돼서 예전처럼 강경일변도로 나갈 수 없을 것이란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다만 진보 좌파, 사회주의적 색채를 가지고 현재 여당과 합쳐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보수세력의 역할에 대해서 이씨는 "이제 반공은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정략을 위한 흉기가 돼선 안 된다"면서, "최근 선거운동 과정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실용주의를 내걸었는데 그것이 앞으로 한국 보수가 취해야 할 훌륭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씨는 총선 이후 우리정치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사회통합과 화해'라고 규정하고 이를 위해 여.야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다음은 데일리안에 실린 이문열씨의 인터뷰 내용.

- 총선이 막 끝났다. 이번 총선결과를 어떻게 보시는지.

▲ 이번 선거는 미완성으로 끝난 지난 2002년 대선을 보완 또는 마무리 선거라는 의미가 크다. 다시 말하면 총선이 아니라 대선을 한번 더 치른 결과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막판에 정몽준(MJ) 후보의 지지세력을 더해서 뒤집기에 성공했다. 이는 한나라당이나 야당지지자들에게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4년 11개월 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줄 곧 이겨 오다 갑자기 한 달만에 역전된 것이다. 그렇다고 결과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지만 실질적으로는 대통령 당선에 깨끗하게 승복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탄핵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시작부터 대통령 선거의 보완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는 한 가지는 시원하게 마무리 지었다고 봐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를 할 수 없게 됐다. 헌재의 판단은 별개 문제지만, 기각된다면 대통령 자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이번 총선이 앞으로 4년간 입법 활동을 해야 할 입법 전문가들을 뽑아야 하는데, 대통령 선거인단을 몽땅 뽑아 놨으니 그것이 걱정이다. 17대 총선 역시 선거본질에 있는 입법 전문가를 뽑은 것이 아니라서 분명히 전문성 때문에 앞으로 문제가 많이 생길 것으로 본다.

- 탄핵과 부정부패 등으로 야당이 크게 퇴조할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한나라당이 선전했다는 평가다. 한나라당의 121석에 대한 평가는.

▲ 그 결과는 사실 이번에 결정된 것은 아니고 지난해 연말 차떼기사건이 터지고 난 뒤 이미 결정된 것 이었다. 그 때 당시도 100석 정도로 의석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역구가 조금 늘어났기 때문에 121석을 차지한 것이다.

참여정부의 가장 좋지않은 '업적'의 하나는 의회를 망쳐놓은 것이다. 모든 독재자들이나 파쇼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의회를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16대 국회의원들이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15대, 14대 의원들 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차떼기 사건도 그렇다. 죄라는 것을 알고 할 때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행위가 관행화 되면 고의가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돈 선거는 16대에서만 한 것이 아니다. 돈을 받는 쪽이나 돈을 주는 쪽이나 아무 죄의식 없이 행해져 왔다. 이 정부에 악의를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의 관행처럼 굳어져 온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실정법을 갖다 들이대고 의원들을 잡아들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권좌에 오른 사람이 의회를 이런 식을 장악했으니 앞으로 국회가 어떻게 될 지 참 걱정이다.

- 이번 선거에서는 또 지역주의가 되살아났다는 의견도 있다. 지지성향이 동서로 뚜렷하게 갈라진 모습을 보였는데.

▲ 나는 이 결과가 지역감정 탓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의 지역감정이 완화됐다고 본다. 대신 지역 이기주의가 새로 나타났다고 본다. 이것은 매우 희망적인 결과다.

지역감정은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지하는 맹목적인 추종이다. 사실 충청도 지역도 한나라당 정서가 많았다. 지난 대선 때부터 확 돌아섰는데 그 이유가 수도권 이전 공약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역이기주의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전의 지역감정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다. 저 사람이 돼야 우리지역이 좋아진다는 생각이 이번에 확연히 나타났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감정이 작용을 했다면 자기지역의 거물급 의원들, 특히 동교동계 의원들이 줄줄이 낙마했겠는가. 지역감정이 아니라 지역이기주의다. 경상도도 마찬가지다. 국민 정서가 지역감정에서 지역 이기주의로 옮겨간 것이다. 지역 이기주의는 영악하지만 합리성이 내포된 것이다. 지역감정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으나 앞으로 어떻게 변질될 지 주의 깊게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또한 세대간의 갈등도 심각했는데 어떻게 보는지.

▲ 모든 혁명적, 비합법적인 정권은 때때로 세대간, 계층간의 투쟁을 이용한다. 사실 그렇게 해서 창출된 정권은 합리적, 민주적이지 못하고 권위적이며 폭력적이어서 정권의 말로는 대부분 불행하게 끝났다.

해방 이후 반탁운동을 벌일 당시에도 그랬다. 국제적으로는 크메르 루즈, 홍위병, 탈레반, 오마르 등도 같은 경우다. 특히 탈레반의 총사령관 오마르는 지난 1994년에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이었다.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탈레반´에 속해 있는 군인들의 나이는 대체로 18세에서 22세 정도이다. 이는 종교적 원리주의와 흡사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을 동원한 정권은 폭넓은 지지층 결여와 정권 자체의 합리성이 결여돼 오래가지 못한다.

-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등장하고, 민주당과 자민련의 퇴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나.

▲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당의 승리는 나머지 정당들의 지나친 위축 내지는 몰락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이라고 본다. 민주당과 자민련이 대패한데 대해서는 참담함과 무상함을 느꼈다. 30년 이상을 안고 오던 것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팽개칠 수 있나.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계기로 지금까지 가져왔던 세상과 민심을 읽는 안목과 이해력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성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나

▲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양면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도정치권 속에 들어오면서 더 순화되고 적응해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예전처럼 강경일변도로 나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보세력이 제도화, 순화되면서 우리 나라의 정치나 사회의 건강성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진보 좌파, 사회주의적 색체를 가지고 현재 여당과 합쳐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까 우려도 된다.

-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등이 선거직후 대통령 탄핵철회를 주장하고 있는데, 탄핵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다시 부상하고 있는 것 아닌가.

▲ 탄핵 철회문제는 우리당이나 민노당이 독자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만약 여당이 탄핵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면 걱정이다. 촛불시위도 빨리 끝내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자꾸 물고 늘어지면 정말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 이번 선거도 수도권에서 박빙지역이 많은 것을 보면 민의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전술로는 이겼지만 민의를 제대로 못 읽었다간 4년후 큰 코 다친다.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과반의석 차지를 보면서 보수진영은 허탈해 하고 있는데.

▲ 허탈해할 것 까지는 없다고 본다. 오래 전부터 예견돼온 것이라 나에게는 그다지 큰 충격은 아니었다. 한나라당 경우 얻을 건 다 얻었다. 민주당이나 자면련 등 여타 나머지 정당들이 시원찮아서 그런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민의에 의한 패배가 아니라 전략전술에서의 패배라는 생각이 든다.

- 총선을 계기로 우리나라가 보혁구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인 보수진영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보수의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나도 처음부터 보수는 아니었다. 살아 보니 어느새 보수인사가 되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도 '임명된 보수'일 뿐이다.

보수라는 것은 이념이 아니라 태도이다. 이념내용이 보수일 뿐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우선 보수는 좌파도 수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러시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 동안 보수가 중시해온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이다.

특히 반공은 냉전시대를 바탕으로 한반도를 오랫동안 짓눌러 왔다. 필요하기도 했지만 강요된 점이 많았다. 때에 따라서는 정권의 전유물처럼 악용되기도 했다. 이제는 반공이 정략이나 폭력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엄격한 반공은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흉기가 돼선 안 된다.

최근 선거운동 과정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실용주의를 내걸었는데 그것이 앞으로 한국 보수가 취해야 할 훌륭한 내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정치는 어떻게 가야 하나

▲ 가장 큰 과제는 사회통합, 화해와 조화이다. 이는 대다수의 정치인 지도자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다소 낙관주의자처럼 들리겠지만 어쨌든 나라는 돌아가야 하니까. 마음에는 안 들지만 그들도 최선을 다해 선의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다. 그들도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인데 기존 체제를 무조건 부인하고 그래서 나라를 망치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 한다. 그들도 노력을 할 것이다.

-여전히 왕성한 저작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 작가로서 활동 계획은

▲ 나에게 작품은 가장 중요하다. 빨리 좋은 글을 내놓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은 사실 없다. 언제부터인가 시국 현안에 대한 평가를 자주하다 보니 나 자신도 애매한 인간이 돼 가는구나 하고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작가 이아무개로 불려왔다. 다른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작품은 언제쯤.

▲ 원래 6월로 생각했는데 7, 8월이면 새로운 작품이 나올 것이다. 제목은 ´호모엑스큐탄스´(Homo Excutance)로 정했는데 ´처형하는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에 대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현 시대의 정치 종교적 상황을 많이 반영했다. 원고는 약 1800매 정도인데 두껍게 단행본으로 낼 지,두 권으로 나눠 낼 지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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