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쿨’한 맛 없지만 한국적 정서로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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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컴퍼니’를 본 건 지난해초 뉴욕 브로드웨이였다. 충격적이었다. 1970년에 초연된 작품을 30여년만에 리바이벌한 존 도일 연출가는 오케스트라를 없앴다. 대신 10여명의 출연진들이 직접 악기를 들고 무대에 나와 연주하다, 자신의 차례가 오면 배우로 변신하는 1인2역을 수행했다. 내용은 뮤지컬판 ‘섹스 앤 더 시티’를 연상시켰다. 다만 미혼 여성이 아닌, 뉴욕의 젊은 다섯 커플을 생생하고 감각적으로 그렸다. 주인공 35살의 미혼남 바비는 이들 커플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연애와 결혼도 대입시켰다. 결론은 없었다. 극적 구조가 아닌, 에피소드 위주의 열린 구조라는 측면에서도 신선했다. 이른바 ‘컨셉 뮤지컬’이었다. 그래서 ‘컴퍼니’가 한국에서 공연된다고 했을 때 기대도 컸지만 사실 ‘잘 만들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작품은 지난 5월말 처음 올라갔다. 실망스러웠다. 노래가, 안무가, 무대가 이상했다는 게 아니다. 그건 정서였다. 원작의 ‘컴퍼니’는 쿨했다. 쿨함이란 뭘까. 객관적이고 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서늘함 같은 게 아닐까. 그런데 한국 공연에선 그게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남의 일에 끼어들기 좋아하고, 쉽게 흥분하고, 정파적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한 우리가 ‘쿨’이란 정서를 소화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건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나, 무대에 선 배우나, 작품을 보는 관객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내에서 공연된 ‘컴퍼니’는 원작의 쿨함과 한국적 정서를 오락가락하며 방향을 잃었다. 특히 훌쩍거리며 노래하는 마지막 바비의 장면은 ‘쿨하지 않음’의 압권이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판 반전이 또 도사리고 있었다. 지난주 다시 보러간 ‘컴퍼니’는 두달전과 180도 달라져 있었다. 솔직했다. 애써 쿨한 척 하지 않았다. 조금 싼 티가 나고, 조금 구질구질해도 우리 정서에 훨씬 와 닿게 자연스럽게 다져져 있었다. 작품은 17일에 끝난다. 객석은 썰렁했다. 지금의 흥행 성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이 다시 올려지기란 0%에 가깝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만한 모던한 뮤지컬을 언제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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