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과 바구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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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10면

부모에게 받은 이름을 이런저런 이유로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어감이 좋지 않거나 역술상 마음에 들지 않는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자유선진당 대변인인 박선영(52) 의원처럼 두 번씩이나 이름이 바뀐 경우는 흔치 않다. 한 번은 본의 아니게, 한 번은 본인 뜻에 따른 것이었다.

대구에서 딸 셋 중 맏이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연희’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식구들이 외가가 있던 춘천으로 이사를 가면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춘천의 동사무소 직원이 이름을 옮겨 적으면서 ‘연(蓮)’을 ‘운(運)’으로 잘못 적은 것. 후에 전학통지서를 받은 초등학교 담임 교사가 그를 “박운희”라고 불렀을 때야 비로소 이름이 바뀐 사실을 알았다. 두 동생의 이름도 졸지에 ‘연’자가 ‘운’자로 달라졌다.

개명을 위해서는 법원에 소를 제기해야 했다. 하지만 변호사까지 선임해 이름을 고치는 일은 “밥 먹기조차 쉽지 않았던” 그의 가정엔 너무 큰 사치였다. “새로운 이름도 나쁘지 않으니 그냥 살자”는 어머니의 설득에 공책에 적힌 이름을 고무로 그날 밤 싹싹 지웠다. 새 이름의 발음 때문에 그는 학창시절 내내 ‘바구니’ ‘소쿠리’ 같은 별명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197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그는 1년 뒤 직종을 바꿔 12년간 기자를 했다. 방송 여기자가 귀하던 시절 보건복지 관련 부처를 출입하며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관련 리포트를 하던 모습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한다. 그의 이름을 빗댄 ‘바구니에 가득한 경제’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그의 미니 홈피에 ‘MBC 박운희 기자와 많이 닮았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박 의원은 89년 방송사를 그만뒀다. 이화여대 법대를 수석 졸업한 뒤 경제적 이유로 중단했던 공부에 대한 한이 있었다. 한번 빠지면 무섭게 몰입하는 성격 덕택에 95년 서울대 법대 대학원에서 헌법 전공자 중 최단기 박사학위 취득(3년 반)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선영’이가 된 것은 대학 교수(가톨릭대·동국대)가 되면서다. 교수가 돼서까지 이름 때문에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현직 판사인 남편(민일영 법원도서관장)과 상의해 개명 신청을 했다.

새 이름을 ‘베풀 선(宣), 비출 영(映)’으로 한 것은 사연이 있다. 두 명의 은인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한 명은 76년 시국사건에 연루된 그를 서대문경찰서 면회실로 찾아와 “이 아이는 내가 책임진다”며 데리고 나온 김옥길 전 이화여대 총장. 또 한 명은 MBC 입사 때 신원조회에 걸린 그를 자신이 보증한다며 입사시킨 이환의 전 사장이다.

정치 초년생답지 않게 수완이 있는 대변인이라는 평과 상아탑을 박차고 나온 ‘폴리페서’라는 비판이 엇갈리는 박 의원. 아나운서→기자→교수→국회의원으로 변신해 온 그의 다채로운 인생 ‘바구니’에는 앞으로 또 어떤 내용물이 담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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