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의뿌리가바뀌고있다>2.고교추첨시대 學脈이 안먹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언제 우리를 후배 취급이나 했습니까.』 「뺑뺑이 세대」인 회사원 朴모(35)씨는 선배들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朴씨는 77년 추첨으로 서울의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다.그때만 해도 명문학교에 입학해 쾌재를 불렀다.그러나 엘리트의식이 있는 선배들은 후배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동문이라며 전화를 하자 부아부터 치민 것이다. 『후배라고 쳐주는 게 뻔히 선거 때문인줄 아는 데 우리가 왜 갑니까.』 경기고가 삼성동으로 옮기면서 강남갑지역에는뺑뺑이 세대 경기고 동문이 수없이 늘어났다.그러나 이 지역에 출마한 경기고 동문인 서상목(徐相穆.신한국당).홍성우(洪性宇.
민주)후보는 둘 다 후배 모으기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젊은 동문들이 밀집해 있어 바람몰이를 해줄 것으로기대했습니다.그런데 초청장을 보내도 모인 것이 10명이 안 돼요.』 할 수 없이 다른 지역에 사는 경기고 동문들을 끌어모았다. 徐의원은 『젊은이들이 개성이 강한 데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 동문의식이 더 희박해지는 것같다』고 해석했다.
이런 현상은 다른 학교나 지역도 마찬가지다.『뺑뺑이세대는 말이 안 통해 별도의 전략조차 꾸미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최병렬(崔秉烈.신한국.서초갑.부산고)전서울시장은 『추첨세대 동문은 파악도 못 해봤다』면서 『나중에 시간이 있 으면 전화나한번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치의 큰 뿌리를 이뤄온 학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60%를 넘는 20~30대가 모두 뺑뺑이 세대이기 때문이다.
용산고를 중퇴한 강창성(姜昌成.민주)의원이 아침 일찍 남산에서 체조하는 주민들을 만나러 나갔다.40대 후반의 한 남자가 뛰어오더니 『선배님,후배입니다』라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용산고 출신이었다.40대 이전의 시험세대는 이런 끈끈 한 맥이 있다.그러나 더 많은 숫자를 갖고 있는 뺑뺑이세대는 동창회에도 나오지 않는다.
극심한 정치변동도 동문간 결속을 파괴하고 있다.대전 중구에는대전고 동문이 무려 4명,동을과 서을,대덕구에서는 3명이 맞붙고 있다.
대구 남구에도 3명이 경북고 동문 대결을 벌이고 있다.심지어대덕구의 이인구(李麟求.자민련)전의원과 김원웅(金元雄.민주)의원은 서로 고발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동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있다. 특히 경북고 동문회는 3당 통합과 TK세력이 팽(烹)당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는 갈가리 찢겨졌다.
대구에서 신한국당후보로 나선 강용진(姜湧珍.대구서갑.경북고)후보도 동문 지원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
『뭔가 다른 연고가 있어야 「살려주소」라고 부탁하지요.동문이라고 그런 말해봤자 씨도 안 먹힙니다.』 김진국.김현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