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조기유학 꼭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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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생을 둔 한국의 학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우리 아이 조기 유학을 보낼까’ ‘이민을 가 버릴까’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10여년 간 민족사관고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조기유학에 대해 느낀 점이 많다. 물론 이 글에서 조기유학은 단기간 어학연수 후 다시 귀국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교육에 회의를 가지고 있거나 더 효율적인 영어교육을 원하는 학부모, 아이를 세계인으로 키울 목적으로 초등 또는 중학교 때 영어권 국가로 유학시켜 바로 외국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학부모의 경우로 한정한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잃을 수 있어
  첫째, 장점부터 말하면 조기유학은 영어교육에 확실히 유리하다. 그것도 빠르면 빠를수록 원어민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세계인으로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엔 긍정적인 말을 하기가 어렵다. 아주 어릴적에 유학을 할 경우 특별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교육을 받지 않으면 외국의 정체성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외국의 언어·문화를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보다 외국의 문화와 사고방식에 지나치게 몰입될 수 있다. 성인이 돼 외국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에게 친미파니 친일파니 하는 말을 붙이는 경우도 외국의 문화·교육에 지나친 애착을 표시함으로써 생겨난 용어라고 본다.
  하물며 어릴 적 유학을 간 학생은 오죽할까. 글로벌 마인드보다 유학을 간 국가의 문화와 정체성에 자신을 일치시키려는 경향이 강할 것이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민사고에 다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그 중엔 한국어를 거의 못하거나 한국사의 주요 인물을 모르는 학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영어로만 수업하는 것이 민사고의 정체성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 적도 있었다. 여러 교사와 함께 국어·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민사고는 현재 국어·국사 시간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민족문화체험교육 등 여러 면에서 미래 국가 지도자 양성에 힘쓰고 있다.
 
외국 교육이 반드시 한국 교육보다 나을까?
  셋째, 한국의 교육보다 외국의 교육이 더 나은가? 반드시 그렇진 않다. 특히 초·중등생은 더욱 그렇지 않다. 보통 미국의 교육여건이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 낫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조기유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초·중등생의 경우는 설혹 외국의 교육제도가 우수하다고 해도 위험성이 많다.
  아무리 좋은 교육 제도와 환경 속에 있다고 해도 학교가 학생의 생활·학업을 부모만큼 보살피지는 못한다. 아예 가족 모두 이민을 하거나 확실하게 학생을 관리할 보호자가 없다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영국·미국·중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이들 국가는 한국에서 온 조기유학생이 가장 많다. 연구나 사업차 이들 국가를 방문했다가 조기유학생들의 근황을 보고 들었다.
  너무도 심각한 상황이 많았다. 그곳에서 오래 산 사람들에게 묻고, 직접 학생들을 만나는 동안 조기유학의 환상이 싹 없어지고 말았다. 잘 헤쳐나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은 매우 힘든 상황인 경우가 많았다. 언어장벽, 학업부진, 술·담배·섹스·마약 등 좋지 않은 환경 들이 유학생활의 악순환을 가져 올 수 있음을 보았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돈으로 졸업장도 살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특히 학생만 외국에 간 경우 부모가 그 학생들의 생활을 알려면 전화나 이메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공부가 힘들 경우 그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는 기분에 유학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들은 그 말을 그냥 믿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입에서도 그리 유리하지 않아
  마지막으로, 대입에서도 그리 유리하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조기유학생은 방학 때 한국의 학원에 다니며 대입 준비를 한다. 현지에서 한국 학생이 학원에 많이 다니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이유는 한국만큼 입시교육 준비가 잘 돼 있는 나라가 드물기 때문이다. 외국대학 입학 노하우도 한국인이 훨씬 관심이 많고 꼼꼼히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국대학에 가는 것이 미국에서 미국대학에 가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영어교육이 많이 발달돼 있다. 이런 저런 점을 고려하면 조기유학을 권장하고 싶지 않다. 

링구아어학원 고문·하나유학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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