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처럼 ‘튀는 생각’ 가진 안과계의 이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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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당 5억원 넘는 팝 아트의 대표작가 앤디 워홀의 작품 앞에 선 엄승룡 원장. 신인섭 기자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던 손님이 당황한 듯 주춤한다. “여기…, 안과 아닌가요? 내가 층수를 잘못 알았나.”

서울 서초동 대준빌딩 10층 ‘눈 & 아이 안과’ 앞에서 요즈음 자주 벌어지는 풍경이다. 보는 이의 눈을 압도하는 미술 작품들이 널찍하고 깔끔한 공간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팝 아트의 대표 작가 앤디 워홀의 작품 석 점이 나란히 걸린 벽면을 지나 현대미술의 스타로 떠오른 데미안 허스트의 근작, 프랑스 조각가 장 피에르 레이노의 ‘빅팟’까지 보고 나면 여기가 안과인지 갤러리인지 잠시 헷갈리게 된다.

웬만한 화랑 저리 가랄 소장품을 걸어 놓은 이 안과의 주인은 엄승룡(47·가톨릭의대 외래교수) 원장. 6월 10일 병원을 개원하며 그는 ‘새로운 개념의 시력교정 안과’를 내세웠다. 오프닝 기념 전시회 ‘팝 아트전-앤디 워홀처럼 다른 생각’은 말 그대로 병원에 대한 기존 개념을 교정해 주는 새로운 체험이다.

“20년 가까이 안과 전문의로 일하며 환자들에게 뭘 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분들 덕에 돈도 벌었고 눈에 관한 한 기술과 테크닉은 남부럽지 않게 됐지만 그것만으로는 제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남았어요. 과연 시력만 되찾아 주면 되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이랄까요.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일이다 보니 자연스레 미술과 연결되더군요.”

2000년부터 한 점 두 점 모으기 시작한 미술품을 여럿이 나눠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아예 330㎡(100평)쯤 되는 병원 절반을 뚝 떼어 내 전시실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땅값 비싸기로 이름난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언저리 빌딩의 공간 165㎡를 진료와 상관없는 갤러리로 만들었으니 어지간한 배짱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모하다는 소리도 들었고, 미친 놈이라는 오해도 받았지요. 하지만 환자를 보면서 작품도 즐기고 함께 미술 얘기도 나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더군요. 하루 종일 병원에 있어도 피곤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작품들 덕 아닐까요.”

안식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아예 유럽과 미국의 주요 미술관과 화랑을 돌며 집중해 미술 공부를 했다. 그가 ‘멘토’라 부르는 선배 컬렉터를 사숙하며 홀로 키운 안목이 이제는 ‘컨템퍼러리 아트’ 분야에서는 자신할 만한 수준이 됐다. 전문 화상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대단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작품 구입을 국내 화랑가나 옥션을 통해서는 일절 안 하고 외국 갤러리나 개인 소장가와 직접 하는 까닭도 ‘나만의 감식안’을 믿기 때문이다.

“남 말 안 듣고 제 눈과 감각으로 고른 작품들이다 보니 나름 독특한 개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장 피에르 레이노의 ‘빅팟’을 올려놓은 작품대는 제 아이디어인데 어떤 분이 보시더니 ‘왜 세면대 위에 화분을 올려놨어’ 하시더군요. 잠깐 웃었지만 전 제 눈을 믿습니다. 한 은행의 광고에 활용돼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야 그 양반 개인전이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으니 제가 꽤 앞서간 것 아닐까요.”

앤디 워홀 작품 한 점 가격만 5억원쯤 된다. 얼추 따져 보니 전시물 가치는 20억원 정도다. 이런 미술품을 병원에 두고 밤에 집에서 잠이 올까 궁금했다. 엄 원장은 “많은 분이 꼭 그걸 묻는다”며 빙그레 웃었다.

“24시간 폐쇄회로(CC)TV가 병원 내부를 지켜보고 적외선 카메라와 잠금장치를 해 두었으니 뭐 별일이야 있을까요. 레이저 기기 등 안과 설비가 워낙 비싼 것들이라 미술품과 함께 지킨다 생각하면 편하죠.”

엄 원장은 “저희 홈페이지(www.eyeneye.co.kr)에 들어와 보신 분들이 구경을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화랑이나 미술관을 따로 찾아가려면 일이 되는데 병원 같은 일상생활공간에서 저절로 미술품 감상을 하니 참 좋다고 하실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변변한 화랑 하나 없는 강남역의 문화공간 구실을 하고 싶다”며 “누구나 환영한다”는 초대 인사를 남겼다.

정재숙 기자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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