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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철회' 못할 이유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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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98년 9월 30일 하원을 장악하고 있던 미국 공화당은 여론을 무시하고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리 절차를 개시한다. 선거를 불과 한달여 남겨둔 때였다. 클린턴 스캔들에 대한 탄핵 절차의 시작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 미국 국민은 예상과 달리 공화당에 패배를 안겨주었고 공화당 지도자였던 깅그리치는 정치생명을 마감했다.

미국 국민은 탄핵을 강행한 측의 정치적 속셈을 의심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8년 12월 미 하원이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직후 소추에 찬성했던 제임스 그린우드 등 네명의 공화당 하원의원은 탄핵심판기관인 상원에 클린턴 대통령이 파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편지를 보낸다. 이는 탄핵소추에 찬성한 그들의 행위가 무책임했다는 것을 시인한 것이었다.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로 강행된 클린턴에 대한 탄핵심판은 결국 일부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마저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기각된다. 대통령 탄핵은 정파를 떠나 국민이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잃고 파면을 원하는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컸다. 클린턴의 지도력은 훼손됐고 탄핵을 추진했던 공화당 지도자들은 도리어 패배자가 돼 퇴출당했다. 무엇보다 다수의 미국 국민이 탄핵 공방으로 인해 정치과정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모두 패배자가 된 셈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탄핵 추진에 대한 국민여론 수렴 노력이 부족했음을 시인하고 반성한다고 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탄핵소추는 단지 대통령에 대한 경고에 불과한 것이므로 실제로 파면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은 정략적 이유로 탄핵한 것이므로 떳떳하지 않았다고 사죄의 뜻까지 밝혔다. 탄핵을 추진했던 야3당의 지도자들이 한결같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탄핵을 강행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심판을 청구한 당사자인 국회가 이런 생각인데 왜 헌법재판소가 끝까지 심판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탄핵심판 청구가 부당했다고 여긴다면 당사자인 국회가 취하하면 그만이다. 헌법이나 국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나 우리 헌법 제49조와 국회법 제109조는 국회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청구 취하에 관한 특별 규정이 없다면 이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탄핵소추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고 있는 독일 헌법도 탄핵심판 청구 취하에는 명문으로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만 요구하고 있다.

국회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구성된 헌법기관으로서 어느 기관보다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탄핵이 국민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임을 명백히 인식한 국회는 이를 곧바로 시정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불구적 헌정이 오래 지속되길 원하지 않는다. 탄핵 공방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적 통합이 저해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지도력이 훼손돼 국가적 위신이 손상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정치적 탄핵 공방으로 국정이 마비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국가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대통령.정치인.국민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가이익보다는 정략적 이익을 앞세운 이번 탄핵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국회의원들이 직시하고 있다면 이제라도 헌법의 요구대로 국가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양심에 따라 탄핵을 취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총선이 정당 간의 정책 대결로 발전해 국민에게 그나마 우리 정치에 대한 새 희망을 심어주는 길이기도 하다. 모두가 승리하는 길인 것이다. 과연 국회가 헌법의 요구와 국민의 명령을 이행하는지, 아니면 말로만 반성하고 국민의 뜻을 끝까지 무시하는지 국민이 지켜보고 심판할 것이다.

김동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