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찰스 라이히著 "이 체제를 고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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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뉴욕 타임스의 주간 북리뷰에는 신랄한 내용의 서평도 심심찮게실린다.하지만 찰스 라이히의 『이 체제를 고발한다』(원제:Opposing the System,Crown刊)에 대한 프랜시스후쿠야마의 서평(11월26일자)처럼 철저하게 적대적인 비판은 흔치 않다.그 책이 애초에 서평의 대상이 된 까닭조차 의아할만큼 여지없는 혹평으로 일관했다.
문제의 책에서 라이히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을 언급하지않았다.그러나 60년대의 저항정신을 집약한 『녹색의 미국을 위하여』(원제:The Greening of America,1971)로 한 시대를 그었던 예일대법대 교수가 20 여년의 침묵을깨고 다시 대중을 향해 입을 연 데는 후쿠야마 같은 논객들의 근래 활약이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후쿠야마는 공산권의 몰락을 자본주의의 승리로 규정하고 이데올로기 투쟁이 사라진 후의 「탈역사시대」(Post-Historic Age)를 선언했다.그후 몇년간 진보진영은 잠잠했다.라이히의 책이 그동안 기다려 온 진보진영의 응답일까.뉴 욕 타임스에이어 워싱턴 포스트도 주간 북월드(12월17일자)에 존 주디스(뉴리퍼블릭지 편집자)의 서평을 실었다.라이히의 발언은 어떤 의미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것이다.
라이히가 고발하는 체제란 미국 경제체제다.대기업의 실질적 시장통제력은 계속 강화돼 연방정부.주정부등 공조직을 능가하는 지배력을 사회에 미치게 되었음에도 「사(私)기업」이라는 이름으로공적 책임을 면제받는 체제.소수의 관리자들이 이 기적인 기준으로 경제를 운용하면서 「시장원리」의 이름뒤에 숨어 사회에 대한책임을 거부하는 체제.권력만 있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소재가 없는 이 체제의 책임을 추궁하려고 라이히는 나선 것이다.
라이히의 고발은 미국 민주주의정신을 지키자는 것이다.모든 경제활동이 조직화돼 가는 현대세계에서 조직에서의 소외란 곧 생존권의 박탈을 뜻한다.기업의 비민주적 지배로부터 피고용자의 권익을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다면 허울좋은 「직업선택의 자유」가 시민들에게 보장해 주는 것은 「굶어죽을 자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윤추구라는 기업의 목적에는 민주주의정신과 꼭 맞지 않는 면이 있다.상명하복의 권위체제가 능률의 극대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민주사회의 정부는 민주주 의의 가치와 기업의 권위주의 성향을 절충시킬 필요가 있음을 라이히는 강조하며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방임주의에 반대한다.
김기협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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