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윤길현 파문 … SK 스포테인먼트의 종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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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초. 10-1로 앞서고 있는 팀의 투수가 상대 타자 머리 쪽으로 향하는 위협구를 던졌다. 타자가 노려보자 투수는 오히려 ‘뭐가 잘못이냐’는 듯 한판 붙자는 자세를 취했다. 곧바로 양팀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뛰어나왔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겨우 마무리된 후 투수는 삼진을 잡아냈다. 그런데 마운드를 내려가던 그 투수가 다시 타자를 향해 욕설을 해댔다. 그 입 모양이 TV 카메라에 그대로 잡혔다.

15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KIA의 경기에서 나온 장면이다. 투수는 SK 윤길현(25), 타자는 KIA 최경환(36)이다. 이 상황은 ‘윤길현 사건’으로 불리며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다. 김성근 SK 감독이 뒤늦게 17일 저녁 윤길현을 당분간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팬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무엇이 잘못됐나

위협구를 던져 놓고도 윤길현은 오히려 도발적인 동작을 했다. 10-1로 앞선 상황인데도 삼진을 잡고, 필요 이상으로 큰 몸동작을 취했다. 더구나 11년 선배한테 욕설까지 해댔다. 야구 규정을 따지기 전에 버릇이 없었고 소양이 부족했다. 이런 점들이 팬들을 자극했다. SK의 경기 운영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SK 코칭스태프는 윤길현을 9회에도 마운드에 올렸다. SK는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으면서도 수시로 투수 교체를 하며 상대를 윽박지르기 일쑤다. 이날 싸움의 단초가 된 SK 선발 레이번과 최경환의 언쟁도 사실 SK에서 도발한 측면이 강하다. 큰 점수 차로 이기는 경우 상대에게 ‘무관심 도루’를 허용하는 게 야구계의 관용이고 정서다. 그런데 6회 KIA 김원섭이 무관심 도루를 하자 SK 레이번이 이의를 제기했고, 이때부터 갈등이 싹텄다.

◇사건, 논란 … 또 SK인가

SK는 시즌 초에도 ‘2루 수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두산은 “SK가 주자를 방해하는 비신사적인 수비를 한다”고 주장했고, 여기에 김재박 LG 감독까지 두산의 손을 들어주면서 논쟁이 불붙었다. SK는 왜 논란의 중심에 자주 설까. SK는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경기 운영에서는 상대에게 조금의 관용도 없다. 승패가 거의 갈렸는데도 쉬지 않고 몰아친다. 지난해 선동열 삼성 감독은 “부관참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라며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이런 사정으로 SK는 야구계에서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부터 SK는 수비 방해와 빈볼 구사 등으로 자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스포테인먼트’는 어디에?

김성근 SK 감독은 올 시즌 ‘예의’에 관한 말을 자주 했다. 청룡기 야구에서 학생들이 필요 이상의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보고 “절도 있고 예의를 지키는 야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표선수 차출 때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김경문 감독에게 “예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런데 ‘예의’와 가장 거리가 먼 게 바로 ‘윤길현 사건’이다. 하지만 감독도 구단도 팬들을 향해 아직 사과문 하나 내놓지 않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윤길현 징계’ 요구와 ‘문학구장 무관중 경기 동참’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SK는 ‘팬 서비스를 한다’며 올 시즌 ‘스포테인먼트 2.0’을 내세웠다. 하지만 최고 고객인 팬들에게 불쾌감을 줬고, 반성도 하지 않는다면 그런 ‘스포테인먼트’는 ‘모래 위에 지은 집’ 격이라는 지적이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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