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촛불에 편승하는 이익단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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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촛불집회에 슬그머니 편승하는 이익단체들이 늘고 있다. 10일 서울 도심 집회에서는 공기업 노조원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수돗물 값만 하루에 14만원’이란 전단지를 뿌리며 “공기업 민영화를 포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측은 “우리는 정부가 민영화를 안 한다고 할 때까지 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촛불집회로 궁지에 몰린 정부를 최대한 압박해 완벽하게 항복선언을 받아내겠다는 계산이다.

‘하루 물값=14만원’은 생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생수로 샤워하고, 생수로 빨래하고, 화장실 변기까지 생수로 내릴 때 나오는 수치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공갈로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이유는 뻔하다. ‘신(神)의 직장’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의도다. 우리 사회는 이미 오일쇼크와 경기침체로 허리띠를 졸라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고액 연봉과 정년 보장의 기득권 사수를 위해 “우리를 손대면 국민들이 죽어난다”고 외치고 있다.

다가오는 경제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공기업 개혁은 서둘러야 한다. 이미 나온 10조원 규모의 에너지 대책에다 앞으로 재정을 투입해야 할 일들이 줄줄이 남아있다. 외환위기 당시를 기억해야 한다. 정부는 포스코·KT&G 등 알토란 같은 보유 지분 21조원어치를 팔아 경제난을 타개하는 실탄으로 삼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바로잡고, 역사적 기능을 다한 공기업부터 과감히 매각해야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어수선한 촛불 시국을 틈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왜 공영방송 궤도를 수없이 이탈했고, 걸핏하면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달라는 KBS를 촛불이 지켜줘야 하는가. 이미 공기업의 소득이 민간기업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은 수많은 통계에서 확인됐다. 왜 그들이 서민보다 더 크게 ‘정권 퇴진’ ‘재협상’을 외치고 있을까. 지난 10년간 공기업들은 밤새 휘황찬란한 조명을 켜놓고 그들만의 잔치를 즐겼다. 그들을 위해 더 이상 촛불을 켜줄 이유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