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승자는 언제나 옳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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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거스 히딩크(62·사진)의 마법이 신통력을 잃은 것인가.

11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볼리 노이 스타디온. 스페인과의 유로 2008 D조 조별 리그 1차전이 끝난 뒤 히딩크 감독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경기 내내 초조하게 테크니컬 지역을 서성거린 히딩크는 빗줄기에 머리와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완패였다. 히딩크 감독이 2년 동안 조련한 러시아는 ‘무적함대’ 스페인에 1-4로 무너졌다. 다비드 비야는 이번 대회 첫 해트트릭을 작렬하며 히딩크의 숨통을 조였다.

러시아는 0-3으로 뒤져 승부의 추가 기운 후반 41분 파블류첸코가 만회골을 뽑아냈지만 종료 직전 파브레가스에게 헤딩골을 내주며 고개를 숙였다.

전략에서도 히딩크가 졌다. 아라고네스 스페인 감독은 경기 전날 “러시아의 역습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역습으로 골을 터뜨린 것은 스페인이었다. 아라고네스의 ‘성동격서’ 전략에 당한 꼴이다. 볼 점유율은 54%로 러시아가 높았지만 스페인은 미드필드에서 러시아의 공을 뺏은 뒤 폭포수처럼 러시아 진영으로 치고 올라가 골망을 흔들었다.

히딩크 감독은 “전반에 골대를 맞은 슈팅이 아쉽다. 1-2로 후반을 시작했다면 경기가 조금 달라졌을 것”이라면서도 “승자는 언제나 옳다(Winner is always right)”라고 전술적 실패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선수들의 순진하고 무기력한 플레이에 크게 화를 냈다. “두 번째와 네 번째 실점 장면을 봤는가. 그런 실수는 학원 축구에서도 하지 않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32년 만에 호주의 월드컵 본선 진출과 2006 독일 월드컵 16강 등 히딩크는 손을 대는 팀마다 기적 같은 성적을 만들어냈다. 유로 2008에서도 히딩크는 지역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무릎 꿇리고 러시아를 본선 무대로 올려놓았다.

첫 경기에서 참패했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히딩크가 아니다. 15일 그리스전과 18일 스웨덴전이 남아 있다.

그는 “스페인전은 선수들에게 커다란 교훈이 됐을 것이다. 러시아는 젊은 팀이라 3년 동안 배울 것을 3일 만에도 배울 수 있다” 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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