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달러없으면 공산품 "그림의 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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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경제의 「달러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달러화 현상이란 자국이 발행한 공식화폐가 통화로서 교환가치를 잃어가는 반면 달러화가 공식화폐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이다.한마디로 북한중앙은행이 발행한 원화는 휴지조각 취급을 받는 반면 달■ 는 금값이 되는 것이다.
이같은 달러화 현상은 지난 90년대초 연간 1,000% 이상의 극심한 인플레가 발생한 러시아와 멕시코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허근(許槿)박사는 북한경제의 달러화 현상은 인플레와 물자부족이 겹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시중에 돈이많이 풀려 하루가 다르게 북한 원화의 돈값이 떨어진데다 물자마저 생산이 제대로 안돼 주민들이 달러화를 선호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귀순자들은 90년대초를 전후로 북한에 달러화 현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달러나「외화와 바꾼 돈표」는 북송교포 같은 일부 특수층이 외화상점을드나들 때 쓰곤 했다.그러나 90년대 들어서 달러가 절실히 필요했던 북한당국은 달러만 있으면 누구나 외화상점을 드나들도록 했다.그 결과 달러화 현상은 북한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TV.
라디오.의류 등 공산품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외화상점인데이곳은 달러화.엔화,그리고 「외화와 바꾼 돈표」만 받기 때문이다. 달러화 현상은 북한사회에 조용한 혁명을 몰고 왔다.우선 공식화폐인 원화가 휴지조각이 돼버렸다.북한무역은행이 발표한 달러의 공식환율은 1달러=2.16원이다.반면 암시장의 실질 환율은 1달러=100원의 비율로 교환된다.암시장 환율을■ 적용하면대부분의 북한 노동자들은 한달에 단 1달러 상당의 임금을 받는셈이다. 또 빈부격차 현상도 나타났다.무역일꾼.고급 당간부.재일교포등 달러를 만질 수 있는 계층은 가만히 앉아 돈을 벌게 됐다. 물론 달러화 현상으로 빚어진 경제왜곡을 해결하려는 북한당국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92년 7월15일 북한은 대대적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또 러시아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1일 기존의 「외화와 바꾼 돈표」를 새로운 화폐로 대체시켰다.내용면에서 두 조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 목적은 ▶인플레 진정▶사장 원화 강제 환수▶부정축재 외화 색출▶물자유통 질서 확립 등이 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북한당국의 이같은 노력이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본질적으로 달러화 현상으로 인한경제왜곡은 원활한 물자공급과 외환정책으로 풀어가야지 화폐교체같은 미봉책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 이다.
민족통일연구원의 서재진(徐載鎭)박사는 『북한의 공식경제 자체가 마비된 상황에서 새로운 「외화와 바꾼 돈표」발행같은 충격요법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시된다』고 말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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