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개혁 시작됐다 <하> 비리 파헤치는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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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비리를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 수사관들이 지난 15일 안양시 한국석유공사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중앙포토]

검찰이 공기업에 대해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석탄공사·산업은행 등 10여 개 공기업을 수사 중이다. 범죄 첩보가 입수된 공기업은 20여 개에 이른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대검 범죄정보과는 새로운 공기업 비리 의혹을 수집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5월 중순부터 시작된 공기업 관련 수사엔 검찰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전국의 지검·지청이 나섰다. 대검 중앙수사부도 수사에 뛰어들었다. 중수부가 직접 나선 것은 2006년 론스타 사건 이후 2년 만이다.

◇공기업 수사는 사정 수사=이번 검찰 수사는 정권 교체기의 사정(司正) 수사에 버금갈 정도로 범위나 강도가 세다. 수사 배경과 관련, 검찰은 “청와대의 지시로 이뤄진 게 아니다”고 밝힌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수사는 공기업 CEO의 사표가 대부분 수리된 후 검찰의 독자적 판단으로 시작됐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검찰의 공기업 수사가 이명박 정부의 정책 추진을 돕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새 정부가 강력히 추진 중인 공기업 민영화와 CEO 물갈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본래 사정작업이 검찰 수사와 조직 개혁이라는 양날의 칼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CEO 중 ‘코드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들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한국석유공사 황두열(65) 사장을 비롯해 노 정부 때 임명된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집중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황 사장은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다.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25일 확인된 대한주택공사도 지난 정부 내내 ‘코드 인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집권 초기인 2003년 6월 사장에 임명된 김진씨와 2004년 11월 후임 사장으로 임명된 한행수씨 모두 ‘코드 인사’라는 의혹을 샀다.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 전 사장의 경력은 건설업과 무관했다. 한 전 사장은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로,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올랐으나 당선이 되지 않았다. 대신 주공 사장으로 발탁됐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2006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14개 공기업(정부투자기관)의 사장 임명을 분석했다. 당시 19명의 사장 중 해당 기관과 무관한 경력을 가진 인사가 37%(7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 총선 낙선자나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공기업 임원으로 임명되면서 조직 분위기가 흐려졌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향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과거 정권 실세들의 외압이나 이권 챙기기의 실상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공기업이 주관하는 인·허가 업무 처리과정에 정부 부처 및 공기업 고위 임원, 정치권 실세 간의 커넥션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몰아치기식 검찰 수사에 반발하는 사례도 나온다. 접대비 과다 지출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증권선물거래소 이정환 이사장은 최근 “(검찰 수사에) 숨겨진 의도가 있다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공기업 수사 내달 말 일단락”=검찰 수뇌부는 공기업 수사의 성패를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관광공사 수사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석유공사 수사를 맡은 대검 중수부는 ▶임직원들의 횡령 의혹 ▶최근 수년간 1조원 이상이 쓰인 국내외 자원 개발 자금의 운용 과정을 집중적으로 캐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자원 개발에 사용된 자금의 흐름이 투명하지 않다”며 “석유공사 측도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개발 의혹 사건과 비슷한 구조”라며 “석유공사와 해외 자원개발 업체, 이를 연결하는 브로커 간의 자금 흐름을 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관광공사의 외국인 카지노 불법 운영 의혹은 2004년 11월 카지노 임대업체가 H사로 선정되는 과정이 부당하다는 의혹이다. 평가점수가 높은 다른 업체를 제치고 선정된 데는 H사 김모 전 대표와 절친한 구 정권 실세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기업에 대한 수사를 6월 말께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석유공사를 제외하곤 다음달 말이면 공기업에 대한 수사가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승현·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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