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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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제2부 수로부인(水路夫人) 노인헌화가(老人獻花歌) 75 남편이 목장과 농장 일을 성실히 해주고 있는 것은 아주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재산관리인과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 한 사나이와 결혼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관리인인 남편은 아내의 친지인 여자와 밀통했고,아내는그 현장에 있었다.
이 세상엔 외도하는 남편이 숱하게 많지만 아내가 대충 넘어갈수 있는 것은 그 현장에 있지 아니한 까닭이다.
남편의 밀통 현장에서 애욕의 몸부림을 목격하고,쾌락의 신음소리를 직접 귀담아 들은 아내라면 부부생활을 더이상 꾸려갈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더더군다나 아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남편이 모른다면이것은 최악의 사태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셰익스피어처럼 「그것이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한 그것은 최악이 아니다」라며 언어의 유희로 마음 달래야 하는가.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고 선언할 것이다.설령 그 후에 사태가어떻게 달라질지라도 피차 좀 솔직하게 살아야할 것이 아닌가.그래야만 이 질식 직전의 숨통도 틜 것같다.
잠옷을 홈웨어로 다시 갈아입고 아버지 서재로 올라갔다.
안방에 아내가 없으면 분명히 이 방 저방 기웃거리다 서재까지들여다볼 것이다.아리영은 이따금 밤늦도록 아버지 서재에서 책을읽곤 한다.
연푸른 회색 소파가 아리영의 지정석이다.어머니의 지정석이기도했었다. 이 소파에 앉혀 얘기하면 어머니의 말투로 차분히 말할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영 올라오지 않았다.술자리가 길어지는지,아니면 혼자 안방에 들어가 잠들어버렸는지….그렇다고 내려가 살펴볼 수도 없다.무료해서 책을 뽑아들었다.소파 둘레의 책장엔 주로 어머니 장서들이 꽂혀 있다.
『마녀사냥』-.
이탈리아의 대표적 악마론자 구아초의 『마녀요약(魔女要約)』이라든가,로마의 이단(異端)심문관 고문이요,신학자인 시니스트라리의 『색마론(色魔論)』등 16세기와 17세기의 쟁쟁한 마녀론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어머니는 악착같이 마녀에 관한 책과 자료들을 모았다.그것들만추려 엮어도 한권의 실팍한 논문이 능히 될 수 있을 것이다.「마녀들에 관한 마녀론」이라고나 할까.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마녀에 집념을 불태운 것일까.
『…빗자루나 지팡이를 타고 공중을 날아와 모여든 마녀들은 마왕에 대한 경배를 마치면 흥겨운 향연을 벌인다.
식사후엔 춤을 춘다.손에 손을 잡고 둥근 원(圓)을 그리며 추는데 동그라미의 중심부엔 등을 돌리고 바깥쪽을 향하여 돈다.
따라서 남의 얼굴을 보지 않고 추는 것이 이 댄스 파티의 특징이다. 춤이 끝나면 섹스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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