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만명에 시도 때도 없이‘짜증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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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 사는 김모(25)씨는 2006년 초 하나로텔레콤 초고속인터넷통신망 서비스를 신청했다. 이후 김씨에게 ‘하나TV’에 가입하라는 전화가 매일 두세 차례 걸려 왔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김씨는 지난 1월 서비스를 해지했다. 그러나 지금도 스팸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김씨는 “싸우기도 해봤지만 너무 여러 곳에서 전화를 거는 통에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충북 청주에 사는 안모(27)씨는 지난해 10월 이 회사의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했다. 안씨는 가입 신청서에 전화번호와 계좌번호 등을 적었다. ‘개인정보를 제공해도 되겠느냐’라고 묻는 항목에는 일부러 체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씨는 가입 일주일 뒤부터 하나TV나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라는 스팸전화를 받고 있다.

◇고객정보 불법 이용= 유선통신업계 2위인 하나로텔레콤이 자사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이미 해지한 고객 600만여 명의 개인정보 8500만여 건을 불법 유통시켜 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3일 고객 정보를 텔레마케팅 업체에 불법으로 제공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하나로텔레콤 박병무(47) 전 대표이사와 전·현직 지사장 2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하나로텔레콤은 2006년 1월부터 고객의 동의 없이 신상 정보를 전국 1000여 개 텔레마케팅 업체에 건넸다. 텔레마케팅 업체는 이 정보를 토대로 하나TV와 인터넷 전화 등의 가입을 권하는 스팸전화를 걸었다.

하나로텔레콤은 ‘하나로텔레세일즈’라는 계열사까지 차려 놓고 고객 정보를 불법으로 이용했다. 개인 정보를 배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적극적으로 상품 판매에 이용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고 경찰은 밝혔다. 하나로텔레콤 측은 가입을 성사시키는 업체에 건당 수만원의 수당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하나로텔레콤은 업무제휴를 한 J은행에도 고객 정보 96만 건을 불법 제공한 뒤 이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이들에게 자사 상품을 광고하도록 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07년 개정된 정보통신망 이용법에 따르면 개인 정보를 3자에게 제공하는 경우 별도로 본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또 제공 업체의 연락처와 목적을 고지하도록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하나로텔레콤 측에 불법 사항임을 지적했으나 회사 측은 개의치 않고 정보 제공 행위를 계속해 왔다”고 말했다. 또 “개인 정보가 하청 업체로 계속 유통되다 보니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신임 조신 하나로텔레콤 사장은 이날 “수사가 종결되면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른 유명 통신업체도 고객 정보를 불법 유통시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과거 정보통신부와 통신위원회 직원들이 통신업체에 단속을 나가면서 조사 일정과 대상을 업체 측에 미리 알려준 정황을 확인, 공무원을 대상으로 수사 중이다.

◇집단소송 움직임= 23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위한 카페가 개설됐다. 유모 변호사는 “고객 정보를 불법으로 유출한 것은 해킹당해 정보가 유출된 것보다 심각한 문제”라며 ‘하나로텔레콤 정보 유출 피해자 소송 모임’이라는 카페를 개설했다. 이 카페에는 5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가입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장주영·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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