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수준높은 삶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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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든 사람들은 수준높은 삶을 갈망한다.하지만 진정으로 한 나라 국민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려고 경제성장과 개발에 최우선을 두고 추진해 왔고,지금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시아의 네마리 龍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낸 용으로 불려지고 있으며,세계에서 반도체 D램생산은 1위,철강및 조선분야에서는 5위권이내다.
또한 최근에는 우리기업들이 미국 본토에 반도체공장 설립및 미국의 유명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우리는 참으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발전을 해왔다.하지만 과연 우리국민의 삶의 질도세계적 수준인가.
최근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교육.수입.평균수명을 종합해만든 인간개발지수(HDI)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31위라고 하며,또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경제성장은 선진국 수준에가까워지고 있지만 교육.환경.사회보장.물가수준 .노동시간등을 망라한 삶의 질로 따져볼 때는 세계수준보다 크게 열악한 것으로나타났다.이 통계들은 과거 우리의 경제제일주의 국가정책에 미루어 볼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경제력이 삶의 수준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그동안 개인적으로도 어찌됐든 경제적으로 성공하는것이 그 삶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사회풍토가 팽배했다.
그래서 우리는 너도나도 경제적 축적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도모하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할 인륜과 도덕,기본원칙등도경제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면 언제든지 쉽게 버리는 사람들을 신문이나 TV를 통해 볼 수 있다.우리네 순수했던 인심과 풍습은오히려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년대 이전에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이는 곧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험난한 경제성장이 정도(正道)를 밟아온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경제성장은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 그 모든 것들보다 결코우위에 설 수 없다.
우리는 흔히 굉장한 富는 가지고 있으나 인격적으로는 모범이 되지 못하고 황금만능주의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졸부(猝富)라 부르고,결코 수준높은 삶을 산다고는 하지 않는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경제력은 세계수준이지만 부패한 관료와 자기이익만 챙기는 기업가들,시대에 뒤처진 교육제도와 오염된 환경에서 사는 국민들을 누가 수준높은 삶을 산다고 하고,또한 그 나라를 선진국이라 부르겠는가.
수준높은 삶이란,경제력은 있으되 경제력에 얽매이지 않는 균형있는 삶이라고 생각된다.즉 자기이윤과 이익을 사회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삶이 수준높은 삶이다.청렴결백한 공직자가 우대받는 공직사회,종업원들에게 정당한 대우와 아울 러 환경오염방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기업가정신,법을 준수하면서도 더욱 기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업환경등,이 모든 것들이 그나라 국민의 삶의 질을 총체적으로 결정짓는 요소들이다.
지식과 인격수양을 겸비한 교육문화는 경제제일주의로 인해 밀려나서는 안된다.결국 한나라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은 가시적인 경제성장과 보이지 않는 「심성적 요인」이 결합해 결정된다고볼 수 있다.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알고 살아온 우리들 기성세대는 이제 가시적인 결과에만 매달려 살아서는 안된다.우리의 삶에서 1~2초의 여유를 가지고 여러 심성적 요인들,즉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면서 다시 출발할 때다.
경제제일주의에서 비롯된 불법과 탈법,요령과 임기응변의 시대는끝났다.아직 이러한 것들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대구 지하철 가스폭발사고등을 통한 시대적위기의 징조들을 빨리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우리의 자녀가 더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하는 것이 부모로서의 바람이고 책임이다.우리의 자녀들이 훗날 더좋은 사회,더 수준높은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한동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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