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권력과 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미국(美國)의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두렵고 불명예스럽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재임중 혹은 퇴임후 자신의 도덕성에 관한 일반 여론이다.특히 돈문제와 관련된 독직(瀆職)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밝혀지면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사안(事 案)이더라도정치생명을 좌우할 만큼의 중요한 일로 생각했다.
대개가 중류이상 상류층 출신인 탓도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의 돈을 긁어모을 필요가 없었고 대통령 재임중의 모든 수입을 전액 포기한 대통령도 몇몇 있었다.31대 후버대통령은 봉급전액을 국고(國庫)에 귀속시켰고,취임당시 재산이 1천 만달러였던 35대 케네디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수입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16대 링컨대통령은 의회가 백악관(白堊館)수리비로 2만달러만 승인했음에도 몇천달러가 초과됐다 하여 부인과 여러차례 싸움을 벌였으며,28대 윌슨대통령은 경비 절감을 위해 술.담배.
커피까지 끊었다.
따지고 보면 최고권력자의 부패여부는 일차적으로 당사자의 양식에 관한 문제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그가 의회나 언론등의 감시.
통제아래 놓여 있느냐 아니냐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20세기 이후의 최고권력자중 사치와 치부(致富)의 절정을 보여준 사람이 나치스정권의 괴링과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였다는 점만으로 쉽사리 입증된다.
괴링은 독일 최고의 호화저택을 여섯채나 소유하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고가(高價)의 예술품들을 닥치는대로 빼앗아 1천5백여점을 소장하기에 이르렀다.44년10월 베오그라드에 입성한 티토는몇개의 왕성(王城)을 접수해 사저(私邸)로 사 용했는데 호화와사치가 극에 달해 역대 제왕들의 그것을 훨씬 능가했다.물론 강탈과 자진 헌납,그리고 국고낭비가 그들의 치부수단이었다.그들의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국민은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여론의비판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오늘날과 같은 대명천지에 한 나라의 최고통치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거액을 챙겼다면 이건 분명 당사자의 양식에 관한 문제이기 이전에 나라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일이다. 아무리 군사통치 기간중이었다고 해도 국민이 있고,의회가 있고,언론이 있는데 모두들 눈 번히 뜨고 있는 사이에 도둑맞은 꼴이기 때문이다.
의혹을 속시원히 벗겨내는 일만이 앞으로 최고권력자의 부패를 막는 첩경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