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태아 성 감별 금지법’은 그대로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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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태아 성(性) 감별 금지법’의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부모의 알 권리를 제약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과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에 앞서 그제 찬반 양측의 공개 변론을 들었다. 위헌 청구인 측은 “남아선호 사상이 퇴색하고 있는 마당에 현실 법은 실효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보건복지가족부는 “성 감별이 합법화되면 낙태가 급증할 것”이라며 맞섰다.

헌법의 생명존중 정신에 근거해 현행 낙태금지법을 우리는 지지한다. 같은 맥락에서 태아 성 감별 금지법도 그대로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출산 전 성 감별은 낙태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남녀성비가 자연 성비에 근접한 마당에 성 감별이 낙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릇된 생각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를 보면 2006년의 남녀 아동 성비는 첫째 아이의 경우 여아 100명당 남아 105.6명으로 자연 성비와 비슷했다. 그러나 셋째 아이는 100명당 121명으로 성비 차이가 여전히 컸다. 이런 상황에서 태중 성 감별을 허용하면 골라 낳기 식 낙태가 늘 수 있다. 한 해 34만 건의 낙태수술 중 적어도 1% 이상이 ‘원치 않은 성별’ 때문에 이루어지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불법 낙태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듣는 실정에 성 감별 금지법까지 없어지면 낙태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 부모들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성 고르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출산 전 성 감별은 호기심 충족을 위한 것일 뿐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미리 알아본들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태아 상태에서 성 식별이 자연스럽게 된다면 이를 일부러 모르는 척할 수도 없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초기에는 낙태를 시도하려는 부모가 혹시 있을지 모르니 낙태를 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그때 아들·딸을 알려줄 수는 있을 것이다. 헌법은 태아도 엄연한 인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격은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지닌다. 부모의 알 권리는 사실상 호기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