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그러나 이제는 자기 안목을 찾아야할 거예요.이대로 나가다가는 도처에서 무너져 내릴 거예요.』 채영이 신문의 삼풍백화점 사진을 들어보이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안목을 찾자면 사람들이 일상어를 회복해야 할 거예요.보통 소홀하기 쉬운 말들 속에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발견하면 더 이상 남보기에 그럴싸하고 권위적인 말들에 노예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일상어의 발견이란 어찌보면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일상어가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할까?』 민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채영의 얘기는 알 것도 같고모를 것도 같다.
『그리고 그 일이 나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틀림없이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일일 거예요.제가 당신을 처음에 찾은 이유도사실은 심리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야기나 일상어를 찾기 위해서였어요.심리학 지식이야 공부하면 얻을 수 있지만 그 순간에 어울리는 일상어들은 아무 리 공부해도 접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태어날 때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민우는 느닷없는 채영의 질문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태어날 때 기분? 『글쎄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깨어나는 기분이 아닐까.어렸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점점 잠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죽을 때 기분은요?』 『아마도 못견디게 숨막혀 괴로워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버리는 거겠지.』 채영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당신다워요.바로 그런 것이 일상어예요.일상의 느낌,기분 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말들이 일상어죠.그래서 일상어에는 인생이나 자연,사회를 정확하게 보는 단어가 많아요.일상어는머리를 쥐어짜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절로 우 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죠.우리 정치인들이 민심을 파악하는데 자꾸 실패하는 이유가 아마 국민들이 무심코 내놓는 일상어들을 무시하기 때문일거예요.일상어에는 자연의 섭리가 들어 있어서 일상어를 무시하는것은 자연을 거역하는 것과 다름이 없죠.우리 정치인들은 자기 권력욕이 앞서기 때문에 일상어,즉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자연과 맞서 보겠다고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곤 하죠.자연에 거역하는 자는 곱게 죽을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이치죠.
저는 일상어엔 또 우 리 영혼들과 통하는 길도 있다고 생각해요.영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