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黃晳暎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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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제 나가면 나는 작품 쓰는 기계가 될 작정이오.1년에 두편씩 20년 동안 쓸 작정이라오.천지신명과의 약속이며 결심이라오.』 방북 문제로 공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소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씨가 최근시인 이시영씨(창작과 비평사 부사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황씨는 이 구절에 앞서 『나는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소설『객지』의 원고를 들고 다니던 옛날 신선한 출발점으로 돌아가고 싶기도하고,슬로건만 펄럭이는「민족문학작가회의」도 싫어 그 곳을 떠나겠다고 썼다.
그의 글이 진보 성향의 작가들 모임인「민족문학작가회의」와의 이념적 결별인지 아니면 운동방식의 결별인지는 분명치 않다.분명한 듯 한 것은 그는 이제 소설 쓸 시간이 별로 없어 몰려다니는 운동은 그만 두고 창작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황씨는 작가로서의 업무를 등한히한 것을「반성」하는 것처럼 보인다.실제 그는 방북 후 4년여의 해외 체류 끝에 93년 귀국하며『모국어를 떠나 떠돌아 다니는 것 자체가 작가에게는형벌이었다』고 말했다.물론 방북 경험.망명 체험 .옥중 체험등이 그에게는 큰 작가적 재산이 될것이다.그러나 그런「외도」때문에 그는 방북하던 89년 이후 단 1편의 소설도 쓰지 못했다.
그는 지난 18일 면회온 시인 김지하씨에게 이렇게 심경의 일단을 내비쳤다.『남주(시인 김남주.「남 민전」관련으로 수형,출옥후 94년 사망)는 감옥에서 저항을 더 다졌고,형(김지하)은 생명사상을 배웠는데 나는 무엇을배우고 나가나,그게 고민이다.』이 말은 그가 앞으로는 저항이나 증오 보다 한 차원 높은 그 무엇을 찾느라 대단히 고심 중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그는 전에 북한을 가리켜「외세에 대항하는 농성 체제」라고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을「외세의 위협을 구실 로 한 국민 볼모 체제』로 보고있다.지금 그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하다.어쨌든 황석영은「해방 후 가장 문제적 작가」로 평가받고있다.
그의 탁월한 소설적 기량이 감옥에서 방치되고 있는 것은 한국현대문학의 손실임에는 틀림없다.분단시대의 작가적 열정은 이해할수있으나 실정법을 어긴 행위에 대해 그나름의「반성」을 기대하는까닭이 여기에 있다.
李憲益〈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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