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행정체계 개편 논의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충남 당진군이 시 승격을 위해 관내 면 지역 주민 1만여 명을 당진읍으로 위장전입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군청 공무원 집은 물론이고 문예회관·새마을회관 같은,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건물에도 수십 명씩 주민등록이 됐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진군은 현대제철 등 수백 개 기업이 몰리면서 지역경제 발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도시 행정과 여건은 극히 미비하다. 시 승격을 추진한 것도 그래서다. 시로 승격되면 공무원 조직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진군은 개발 수요에 따른 민원 처리와 계획적인 도시개발을 위한 인력을 우선 채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국 군 단위 행정 능력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를 시 승격을 통해 풀어보려다 엉뚱한 무리수를 둔 것이다.

당진군의 잘못된 행태는 지방 행정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의 한 단면이다. 현행 행정체계는 지역 개발과 행정능률 향상이란 측면에서 제대로 기능을 못한 지 오래다. 교통·통신 발달과 세계화·정보화에 따른 행정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활권·행정권·경제권의 불일치와 지자체 간 갈등으로 광역적 행정 수행이 차질을 빚기 일쑤다. 행정구역 경계가 지역경제 개발의 칸막이로 작용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숱하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기초자치단체 단위로는 추진에 한계가 있는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이래서는 미래지향적이고 효율적인 지방행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행정체계는 조선 말·일제시대에 골격이 만들어진 것이다. 100년 전 체계로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의 행정을 하려니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행정체계 전면 개편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행정체계 개편은 역대 정권들이 변죽만 울리다 덮어두곤 했던 해묵은 과제다. 1980년대 들어 학계와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됐고 17대 국회에서 지방행정체계 개편 특위가 구성되는 등 크게 이슈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지역 경쟁력 강화 차원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논의가 머물렀던 탓이다.

새 정부와 새 국회는 달라져야 한다. 지역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이란 본질에 충실한 행정체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전국을 5대 광역경제권과 2개 특별광역경제권으로 재편하는 ‘5+2 광역경제권’ 추진 방안만 해도 그렇다. 행정체계 개편이 전제되지 않고선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국가의 기본 틀을 바꾸는 행정체계 개편이 쉬운 일은 아니다. 기초자치단체나 기초의회의 반발이 클 수도 있다. 국회의원의 이해관계와도 맞물려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행정체계를 그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몸이 커지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제주도민들이 2005년 주민 투표를 통해 제주도 전체를 하나의 광역자치단체로 개편하는 결정을 한 것을 보라. 실천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정부와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전국적인 지방행정체계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만들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