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길바닥에 내던져진 국민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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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주말 서울 종로구 계동 옛 해양수산부 건물 옆을 지나던 시민들은 참으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건물 옆 도로에 얼핏 보기에도 멀쩡한 사무용 가구와 집기들이 흡사 철거된 건물의 잔해처럼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어느 회사가 임대료를 못 내 사무실에서 쫓겨난 것일까? 사정이 얼마나 급했기에 얼마든지 재활용하거나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들을 이렇게 내던지고 떠났을까? 딱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멀쩡한 가구와 집기를 내다버린 이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들이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옛 해양수산부가 사무실을 비우면서 남겨둔 것을 새로 들어오는 보건복지가족부가 필요없다며 내다 버렸다는 것이다.

설마 자기 집 물건이라면 그랬을까. 평범한 국민들은 새 가구를 들여와 헌 가구를 내놓는 경우에도 이렇듯 함부로 내다 버리지는 못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양부가 방치한 물건들을 밖으로 내놨을 뿐”이라며 “곧 재활용센터에서 가구 등을 가져갈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가구와 집기를 보면 재활용하기 위해 내놨다는 설명이 도저히 믿기질 않는다. 설사 재활용하겠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장만한 물건들을 이렇듯 낭비할 수는 없다. 정부조직 개편도 좋고, 부처 이동도 필요하겠지만 멀쩡한 국가 재산을 왜 내다 버리는가. 한마디로 그 물건 하나하나가 국민의 세금이고 나라의 재산이란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국민 세금 알기를 이렇듯 우습게 알고, 나라 재산 다루기를 헌신짝처럼 다루는 한 예산절감은 요원하다. 이래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근검절약’과 ‘예산 10% 절감’을 외쳐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 이번에는 시민들의 눈에 띄었기 망정이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줄줄이 새는 예산이 또 얼마나 많겠는가. 정부는 차제에 예산 낭비 사례를 낱낱이 밝혀 새는 구멍을 막아야 한다. 또 공무원이 국민의 세금을 진정 내 돈처럼 아끼고 소중하게 다루도록 해야 한다.